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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관, 천으로 만든 혈관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 승인 2019.05.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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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에서 인조혈관을 만들고 있는 의사(위)합성섬유 비니온 엔으로 만든 인조혈관

 

1894년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 아베는 환자를 수술하던 중 잘린 손가락을 이어 붙이더라도 혈관이 모자라서 결국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자란 혈관을 연결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혈관을 연결하는 방법을 찾았는데 바로 유리관을 활용한 것이다.

동그란 형태의 작고 가는 관 모양으로 제작이 가능했던 유리관을 혈관 사이에 집어넣고 끈으로 묶어 버리는 것이었다. 굉장히 단순하고 간단한 방법이었다. 아베는 우선 개의 다리 혈관에 유리관을 연결해 봤다. 강아지 다리는 혈액이 잘 공급됐고 실험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리관 내부는 혈액이 응고돼 혈전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리가 멀쩡했던 것은 막힌 혈관 주위로 작고 가느다란 혈관들이 자라서 혈액을 공급했기 때문이었다. 아베는 두 번째로 고양이의 대동맥을 유리관으로 연결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성공이었다. 고양이는 4개월 이상 생존했고 대동맥은 막히지 않았다. 아베는 계속 양과 개를 이용한 동물 실험을 시도했으나 성공과 실패가 반복됐다. 유리관을 실로 묶는 봉합과정에 혈액이 새어 나와 과다 출혈이 발생하기도 했고, 감염·혈액응고 등의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학자들 사이에서 유리관을 이용한 혈관 연결법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20세기 초 세계대전은 수많은 부상자를 발생시켰고 작은 탄환이 만들어내는 총상은 팔다리가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중요 혈관을 손상시켜 사지 절단의 위험이 높아졌다. 숙련된 외과의사와 물자가 부족한 전쟁터에서 혈관 봉합은 어려운 일이었다. 혈관을 묶어서 출혈을 막아 생명을 구할 수는 있지만 팔다리는 살릴 수 없었다. 의료진은 팔다리의 혈관을 유지하기 위해 급한 대로 유리관을 이어 묶어 보기도 하고 도자기로 만든 매끈한 관, 은으로 된 관, 황소 정강이뼈를 갈아 만든 관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가 없었고 2차 세계대전 때에는 혈관 손상 부상병의 40%가 팔다리를 잃었다. 의학의 발전 속도만큼 무기의 발달도 빨랐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의사가 외과 인턴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인턴의 업무 중 하나는 동물 실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는데, 뉴욕 맨하튼의 동물 실험실에서 심장 판막 질환을 만들기 위해서 개의 심장 판막과 좌심방을 연결하는 수술을 했다. 인위적으로 심장 판막을 열어 놓기 위한 작업이었는데, 인턴으로 처음 하는 수술에서 심방이 아닌 심실에 판막을 연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몇 달 뒤 실험동물을 부검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실수를 발견하게 됐다. 자세히 관찰해보니 명주실을 따라서 주변 조직들이 자라나서 뒤덮은 것이다. 몸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혈전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세포가 자라 올라 뒤덮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한줄기 실을 따라 세포가 자라날 수 있었다면 실을 연결해서 천을 만들면 천 사이 틈으로 넓게 퍼져 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인공 혈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었던 시절이었고, 이 인턴은 집에 있는 부인의 손수건으로 동그란 관을 만들었다. 손수건으로 만든 혈관을 동물의 혈관에 연결하자 정말 혈전이 발생하지 않았고, 명주실을 따라서 혈관의 내피세포들이 자라나 혈압에 따라 유연한 탄력성을 갖게 됐다. 그러나 손수건 혈관은 미세한 구멍이 있었기 때문에 혈액이 새는 것을 완전하게 막을 수 없었다.

혈액이 안 새도록 빈틈없이 촘촘하게 천을 짜서 혈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명주실이 아닌 더 튼튼하고 가는 실을 찾기 시작했다. 인턴을 마치고 레지던트로 텍사스의 병원에서 근무하게 됐는데, 마침 유니온 카바이드사에서 합성 섬유 개발 중 색깔을 넣을 수 없어서 버려야 하는 비니온 엔이라는 제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웃에게 빌린 재봉틀로 비니온 엔으로 만든 6개의 인공혈관을 제작했고, 동물의 혈관을 연결하자 성공이었다. 이제 진짜 환자에게 연결할 순서만 남아 있었다.

1951년 대동맥 질환의 응급 환자가 병원에 했는데, 의료진은 대동맥을 연결할 방법이 없었다. 의료진은 천으로 만든 혈관을 소독한 뒤 수술실로 달려갔고 환자의 심장에서 뿜어진 혈액은 재봉틀에서 만들어진 동그란 옷감 사이로 흐르기 시작했다. 천으로 만든 인공 혈관이 실제 환자에서 성공하면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

나일론, 다크론, 테프론 등 새롭고 좋은 합성섬유로 인공혈관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1969년 고어가 테프론을 가열해 늘려 미세 구멍이 형성되는 특징을 가지는 고어텍스를 만들어냈다. 고어텍스는 방수 기능을 가진 옷감으로 활용됐는데, 혈액이 새지 않으면서 미세한 구멍으로 세포가 자라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인공혈관 재료로 이상적이었다. 1975년 고어텍스사의 새로운 혈관이 만들어졌고 이후 많은 혈관 수술에 사용됐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1963년 가톨릭 의대 이용각 교수팀이 데크론 인조 혈관을 대동맥에 삽입해 성공적인 치료를 한 이후 최근까지 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의료진과 장비는 준비됐지만 한국 보건당국은 준비하지 못했다. 낮은 의료비용만 고집하는 한국 의료정책은 양질의 의료 재료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고어텍스사는 낮은 가격을 강요당하자 한국에서 철수해 버리고 만 것이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싼 것을 찾을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의료를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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