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2년 겨울, 당나라 장군 소정방은 고구려 평양성을 포위하고 있었다. 백제를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고구려를 공격해 수도인 평양까지 진격하는데 성공했으나, 연개소문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수개월 동안 공방이 계속되면서 식량이 부족해지고 겨울이 되면서 매서운 추위와 마주쳐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당나라는 고구려 땅 깊숙한 평양까지 군수물자를 수송할 방법이 없었다.

위기에 빠진 당은 신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신라 문무왕은 김유신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수송부대를 평양으로 보냈다. 2000대의 수레에 쌀 4000석, 벼 2만2000여 석, 현재 무게로 환산하면 800톤에 가까운 물량을 가지고 고구려 영토 한가운데를 150km나 행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김유신 부대는 천신만고 끝에 평양에 도착했고, 포위하던 당나라 군사는 지원받은 군량으로 굶주림을 벗어나면서 철수할 수 있었다. 이때 김유신이 전달한 군수품에는 식량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은 5700푼, 세포 30필, 두발 30냥, 우향 19냥도 보급품으로 전달했다. 두발, 즉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 30냥(약 1.1kg)이 어렵고 힘든 수송 작전에 들어갔던 이유는 머리카락이 치료용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고대 전투에서 발생한 외상을 치료하고 출혈을 막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머리카락이 사용됐다. 머리카락을 태우거나 기름에 끓였다가 굳힌 것을 바르는 일종의 지혈제나 상처 치료제로 활용했다. 머리카락을 이용한 외상 치료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동의보감에도 지혈제로 식초나 물에 타서 먹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중금속 가루를 이용해서 지혈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오늘날 관점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이만, 수은을 불로장생약으로 먹기까지 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출혈 발생 때 손가락으로 눌러서 지혈하거나 끈으로 동여매는 원초적인 치료방법은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시도됐다. 머리카락까지 활용해서 지혈을 시도했던 것인데 실질적인 큰 효과는 없었다. 전투나 사고로 인한 외상으로 큰 혈관이 찢어져서 피가 계속 나는 경우에는 속수무책으로 대부분 사망했다. 출혈의 근본적인 치료방법인 혈관 봉합은 혈관을 꿰맬만한 작은 바늘이나 실도 없었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외과 수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18세기 영국의 의사 람베르트는 찢어진 혈관도 봉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람베르트는 동료 의사들을 교육하면서 혈관 봉합을 설명했다. 1759년 겨드랑이 동맥이 찢어진 환자를 수술하게 된 할로웰은 당시 사용되던 수술 방법으로 혈관을 묶을 경우 팔이 괴사해 절단해야 했기에 람베르트의 봉합법을 시도했다. 할로웰은 작은 핀을 이용해서 찢어진 혈관의 두 모서리를 모은 뒤 실로 8자 모양의 매듭으로 단단하게 묶었다. 모아진 혈관의 찢어진 부위는 막혔고 출혈은 멈추었다. 물론 항생제도 없고 소독도 제대로 되지 않은 수술이었기에 염증이 발생했고 환자는 많은 고생을 했지만 동맥은 막히지 않고 팔에 혈액을 공급해 주었다.

람베르트의 수술법은 즉시 많은 의사들에게 소개됐다. 의사들은 성급한 시도보다 먼저 동물 실험에 나섰다. 동맥을 절개하고 람베르트 방법으로 다시 봉합했으나 유감스럽게도 대부분 혈관은 염증과 혈전으로 막혀버렸다. 특히 맥박 치듯이 혈액이 솟구쳐 나오는 동맥 가운데 출혈 부위를 잘 찾아서 봉합하는 것은 신기에 가까운 손기술이 필요했다. 수많은 의사들의 실패로 혈관 수술은 위험한 것으로 생각해 더 이상 시도되지 않고 잊혀졌으며, 감염에 대한 리스터의 소독법이 나타나기까지 10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혈액이 맥박과 함께 솟구치는 동맥에 비해 정맥은 혈관 봉합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혈액이 흐르는 가운데 봉합을 시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연히 집게로 혈관을 잡으면 혈액 공급이 멈춰 출혈 부위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봉합하기에도 용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882년 글루크는 동물의 동맥을 절개한 뒤 집게를 이용해서 피가 안 나게 한 뒤 혈관을 꿰매는데 성공했다. 글루크의 성공으로 다른 많은 의사들이 혈관 봉합을 시도했다. 마침내 1897년 총상을 입은 환자의 동맥이 성공적으로 봉합됐다. 그러나 미세한 혈관을 꿰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다 타고난 손기술이 필요했다. 1900년 프랑스의 카렐이 혈관 봉합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동그란 혈관의 곡면을 따라 봉합하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그러나 혈관 세 곳에서 잡아당겨 삼각형으로 만든 뒤 각 직선면을 봉합하는 것은 비교적 쉬웠다. 카렐의 혈관봉합법이 발표되자 많은 의사들이 활용했고 동맥 출혈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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