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보물창고 ‘경기도박물관’

“시간의 축을 따라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는 의식주 생활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삶의 리듬에 활력을 불어넣은 세시풍속과 의례, 그리고 함께 즐기던 놀이와 예술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조상들의 생활문화 속에 전해온 슬기를 발견하는 체험, 그것은 우리 스스로 미래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또다른 작업이 될 것입니다"
-경기도박물관 민속생활실 ‘경기도 그 땅과 사람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 공간에 박물관이나 미술관(미술관도 넓은 의미의 박물관이지만) 등 역사문화공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날을 잡거나 큰 마음을 먹지 않아도 언제라도 역사와 문화를 손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용인에도 경기도의 고대 역사부터 근대 생활사까지 선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1996년 6월 기흥구 상갈동에 문을 연 경기도박물관이다.

필자가 경기도박물관을 처음 방문한 때는 박물관이 개관한 지 1년 즈음 됐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몇 년간은 한 달에도 몇 번씩 도박물관을 드나들었다. 후임 기자에게 문화분야 취재 업무를 넘겨준 뒤로도 양주별산대놀이 등 눈길을 끄는 공연이 있을 때면 사진 촬영도 할 겸 주말을 이용해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찾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다른 이들보다 도박물관을 그렇게 많이 찾으면서도 취재가 아닌 지적 호기심이 발동해 시간을 갖고 박물관 안팎을 느릿느릿 둘러본 적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지역신문 기자가 아니었다면 도박물관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며칠 전 연재기사를 위해 도박물관을 찾았다. 거의 4년여 만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기사가 목적이었지만, 과거의 방문 때와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전날부터 내린 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20년 동안 가장 진지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했던 날이었다. 당장이라도 비가 올 듯 잔뜩 찌푸린 날씨 속에 찾은 도박물관에서 필자는 세 번 놀랐다.

 

박물관 1층 민속생활실 모습.

박물관의 재발견, 그리고 새로움

먼저 평일 낮이었음에도 관광버스 예닐곱대가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데 대해 놀랍고 반가웠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낀 궂은 날인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의외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놀라움과 반가움은 채 5분도 가지 않았지만, 아쉬움의 여운 속 반가움은 남았다. 차를 주차하고 돌계단을 따라 박물관 앞 광장에 들어섰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경기도박물관 옆 예쁘게 꾸며놓은 건물 앞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도박물관 바로 옆 어린이박물관 체험학습을 온 것이다. 반면, 평일이라 위안을 삼아 보지만 두 시간 정도 머물던 박물관 관람객은 필자가 유일했다.

두 번째 놀라움과 반가움은 박물관 광장에 설치해 놓은 설치미술 작품이었다. 박물관 입구 계단과 광장에 설치된 작품에서 도박물관의 변화를 느꼈기 때문이다. 신문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음에도 정말 오랫동안 이 곳을 찾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언제 이런 게 생겼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세 번째는 반가움이 더 컸던 1층 매표소 겸 중앙홀에 설치된 아트숍 때문이었다. 필자는 국내·외 여행을 하면서 빼놓지 않고 찾는 곳 중 하나가 그 나라나 지역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오래된 교회와 성당, 사찰 등)이다. 그 곳에는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구 100만 대도시 용인시에 시립 박물관 하나 없는 아쉬움과 부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유럽이나 일본 등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할 때마다 지역 학생들은 물론,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의 이어지는 발길에 부러움을 시선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잠깐 이야기가 옆길로 새긴 했지만 필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을 마친 후 꼭 들리는 곳이 있다. 박물관 등이 운영하는 아트숍 등 기념품 매장이다. 꼭 뭔가 사야겠다거나 선물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런 곳을 볼 수 있게 해줘 고맙다는 표시로 뭔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기념품 매장이나 아트숍에는 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기념품이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그렇게 기념품 매장을 둘러보다 마음에 들거나 눈에 띄는 게 있으면 한두 가지 선물용이나 수집용으로 구매했다. 이날도 2시간여 정도 전시실을 둘러본 후 아트숍에서 예쁘게 포장된 향낭과 자수 파우치를 하나씩 구입했다. 경기도 역사가 담긴 다양한 책도 구비해 놓았으니 뭘 사지 않더라고 관람 후 둘러보길 추천한다.

 

경기도박물관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동무들아 이날을 기억하느냐’ 특별전을 열고 있다.

경기도 역사의 중심, 용인

경기도박물관은 경기지역 문화의 오랜 전통과 숨결이 숨 쉬는 곳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보다 용인과 관련한 유물이나 문헌, 이야기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이날도 그랬다. 2층 고고미술실 입구 한쪽 벽면 역기도역사에 대한 연표가 있는데, 기원전 30만년경 구석기시대 연천 전곡리 아래에 ‘용인 평창리’라는 다섯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또 경기 전역이 백제 땅이었던 300년경 용인 수지 유적, 1185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용인 서봉사 현오국사탑비 등 용인은 경기도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도자와 불교미술을 주제로 한 미술실에서 입구 오른쪽에 넓게 자리한 유리 전시관이 있다. 청자의 시작-‘용인 서리 가마터’를 축소해 재현해 놓은 모형 가마다. 처인구 이동읍 서리 중덕마을 고려 초기 청자를 굽던 가마터의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복원될 서리 가마터를 상상하니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아울러 도박물관은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6월 30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동무들아, 이날을 기억하느냐’는 주제로 특별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자녀와 함께 한 번쯤 가볼 것을 추천한다. 이 전시는 3·1운동이 일어난 배경과 전개 양상,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중심이다.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 걸고 외쳤을 선열들을 당시 자료들을 통해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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