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꿈꾸는 무장애관광, 에버랜드 동행해 보니

수지IL 이한열 소장이 바이킹을 타기 위해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좌성에 앉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관광은 휴식이지만 장애인에게 관광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세상에 참여하는 기회다. 비장애인이 관광을 일상처럼 자유롭게 즐기듯 장애인도 그래야 한다는 의미에서 ‘무장애관광’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한 관광 편의시설이나 제도가 더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다. 용인시 장애인 주간에 맞춰 진행되는 에버랜드 무료 관람일에 함께 취재에 나선 이들은 지체장애인 윤은주(47) 씨, 시각장애인 김인의(28) 씨, 지적장애인 조희수(23) 씨, 뇌병변장애인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수지IL) 이한열(43) 소장이다. 이들은 에버랜드를 돌며 장애인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생생하게 전했다. 또 장애인 활동보조사 김수연(52) 씨, 박금자(67) 씨, 수지IL 조현아(43) 사무국장, 직원 박성훈(27) 씨도 함께 나섰다.

23일 오후 4시 반, 경전철 용인송담대역에서 에버랜드 관람을 약속한 이들이 모였다. 경전철은 비교적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은주 씨는 “경전철이 생긴 이후로 밖에 다니는 게 훨씬 편해졌다”고 말했다. 에버랜드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길에서 시각장애인 김인의 씨가 하얀색 보조 지팡이를 바쁘게 움직였다. 김 씨는 “점자 블록, 점자 안내가 없어 길을 알 수가 없다. 용인의 대부분 길이 동행자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성인 비장애인이 동행자 없이 어느 곳도 갈 수 없다면 어떨까. 시각장애인이라면 으레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한 기자의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한 마디였다. 그들에게도 길 안내가 필요하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 알 권리가 있다.

에버랜드로 가는 저상 셔틀버스 앞에서 놀이공원 측 직원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경사로를 설치해 휠체어로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안내했다.

에버랜드에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 이한열 소장이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왔다. 바이킹과 사파리월드 관람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고는 활짝 웃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지IL 조 사무국장이 “그럼 바이킹을 타러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때 에버랜드에 오면 누구나 찾는 안내 지도를 받아온 활동보조사 김수연 씨의 표정에 당황함이 역력했다. 김 씨는 “점자 안내 지도가 있는지 물었지만 없었다”면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표기 안내지는 있는데 점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시각장애인 김인의 씨는 “다른 사람이 하나하나 읽어주는 것과 내가 직접 지도와 글자를 보는 건 큰 차이가 있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바이킹 입구에 도착해 직원에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기구를 탈 수 있는 방법을 묻자 ‘우선 탑승권’을 주며 반대 방향에 위치한 ‘출구’로 들어가라고 안내했다. 바이킹 입구엔 계단만 있을 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나 승강기는 설치되지 않았다. 평소 놀이시설을 여러 번 이용해봤지만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너무 당연한데도 경사로나 승강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세심한 배려’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보였던 것이다.

출구로 들어가자 방금 이용을 마친 이용객들이 우르르 나왔다. 이한열 소장과 윤은주 씨의 휠체어 사이로 수십 명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모든 탑승객이 내린 후 이 소장을 휠체어에서 바이킹으로 옮겨 앉히기 위해 박성훈 씨와 에버랜드 직원이 나섰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다음 탑승객들이 불만 없이 조용히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직원은 “우선 탑승객을 위해 잠시만 기다려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이 소장은 “바이킹을 타는 동안 옆에 있던 탑승객이 괜찮은지 묻고 챙겨줘 너무 고마웠다”면서 “시민들과 직원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배려해준다. 하지만 시설 면에서는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다음은 어디를 이용할지 고민하다 결정한 범퍼카는 김인의 씨가 이용하겠다고 나섰다. 평소 운전할 기회가 없었던 김 씨에게 범퍼카는 단순한 놀이기구를 넘어 간접 체험의 기회다. 아니나 다를까 범퍼카를 타고 나온 김 씨의 표정이 지금까지 본 중 가장 밝다. 김 씨는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직접 운전해본 경험은 처음”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놀이기구 이용을 한사코 거절했던 지체장애인 윤은주 씨에게 그럼에도 에버랜드에 오고 싶었던 이유를 물었다. 윤 씨는 “장애인은 평소에 밖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면서 “반짝이는 불빛, 즐겁게 웃고 즐기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 때 활동보조사 김수연 씨와 함께 다른 놀이기구를 타러 다녀온 조희수 씨가 밝은 얼굴로 돌아왔다. 범퍼카를 타러 가기로 결정했을 때 홀로 꼭 타고 싶은 게 있다며 강하게 주장했던 조 씨다.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다보다.

에버랜드에서 장애인들과의 하루는 ‘그들이 즐길 수 있는 게 있을까’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있을까’ 의심했던 기자의 모든 생각을 뒤엎는 동행이었다. 함께 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누구보다 온 몸으로 즐겼고 누구보다 행복해 했다. 그러나 장애인도 즐기기를 원하는 관광지임에도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 공간이라기엔 아직 부족함이 많았다. 계단만 설치된 놀이기구 출입구, 휠체어로 이동이 힘든 경사진 길, 점자 버전 없는 안내 책자처럼 장애인에게는 분명 ‘불편’으로 다가오는 한계는 곳곳에 있었다. 수지IL 이한열 소장은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에버랜드는 우리 같은 장애인들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거의 없어 탄다는 거 자체가 큰 도전”이라며 “휠체어를 탄 채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는 불가능할까. 좀 더 장애인 입장을 고려한 시설 개선을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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