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대한민국의 법정 기념일, ‘장애인의 날’이다. 원래 ‘재활의날’이란 이름로 만들어졌다가 1981년부터 38년간 이어져 온 이 날은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각종 기념 행사와 포상이 이어진다. 이 말은 4월 20일 전후 일주일의 ‘장애인 주간’에는 장애인 복지유공자를 포상하고 장애극복 사항을 확인받아 시상하는 등 여러 잘나고 멋진 장애인들이 지자체와 시의회, 자원봉사자들의 박수를 받는 날인 셈이다. 심지어 다른 기사들 기고자의 표현에 의하면, 4월 20일은 ‘1년에 하루 있는 장애인들의 생일’이라고까지 하기도 한다. 빼빼로 데이를 가래떡 데이로 바꾸자는 즈음에 정부가 만든 기념일을 장애인들의 생일이 이라고 한다니.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장애인의 삶은 전문가에 의해 재활 중심으로 설계되고 ‘잘해야만 한다’는 욕구를 중심으로 사정되고 있다. 제공되는 복지 서비스에 대해서는 더욱 장애인들이 선택하지 못하고 받아야 할 무엇인양 여겨지는 ‘수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너무나 당연한 관점인양 그것에 집중하려던 사람들처럼 매년 이어져 온 행사. 덕분에 장애인들의 엉망인 삶 즉, ‘불편한 진실’은 눈앞에서 너무도 쉽게 지워지곤 한다.

우리나라의 장애인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통계 중 장애인 빈곤율,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인 복지 지출 등 장애와 관련된 통계에서 매년 부정적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장애인을 둘러싼 지역사회 환경도 매우 열악하다.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재가 장애인 20명 중 1명은 한 달에 한 번도 외출하지 못하고, 절반이 넘는 장애인은 기초교육을 받지 못했다. 40%에 이르는 중증 장애인이 대중교통 이용에서도 많은 차별을 경험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고작 2%뿐인 저상버스 도입률을 두고 있는 용인시의 경우 예측하기조차 힘들다.

나는 용인지역 시민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렵사리 살아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의 현실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매년 되돌이표 수준인 장애인 복지와 반복되는 차별에 맞서 우리는 따뜻한 봄이 되는 4월마다 ‘장애인 차별 철폐 공동 투쟁단’을 꾸려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알리고 정부와 지자체에 요구안을 보냈다. 그것은 지역 장애인의 생존을 보장해낼 수 있는 방법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을 알리는 행동이다. 이러기를 매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도 알게 됐고, 그것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420장애인권위원’이라고 표현되는 것쯤은, 이제 전국 인구에 절반이나 될 정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함께 하고 있다.(용인촛불밴드, 수지센터 페북 참조)

 

자원봉사자 아닌 420장애인권위원으로

처음에 6,7대 요구안이던 2000년대 초반과 달리, 우리의 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한 생존권 요구안도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장애인들의 차별의 경험이 더 많이 발굴되고 평등을 향한 욕구가 넓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수지IL도 공투단에 참가함은 물론, 경기지역 요구안에 맞춰 거주시설 장애인 인권실태 문제에 집중하며 거주시설 폐쇄 단계인 시설 소규모화와 지역사회 자립생활 정착 방안을 만들어내는 것에 동의하며, 주 1회 이상 연대활동을 하고 있다.(물론, 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인권을 기반으로 장애인관련 정책, 제도도 변화시키고 의견을 개진하는 사업이 1순위이며, 앞으로도 장애인의 권익옹호를 중심으로 인권 향상을 위한 사업을 해나갈 것이다.)

‘장애인의 날’이라는 행사.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삶을 외면당하고, 순전히 그 안에서 당연한 행사로서 치부되며, 장애가 특권으로 군림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굴레를 벗어야 한다. 장애인의 문제를 국가·지자체 내에서 해결하려면 장애인의 여러 필요와 욕구를 ‘등급’에 따라 제공하는 것, 장애를 극복했다고 여겨지는 소수에게 삶의 지침을 두는 것을 넘어 장애인을 둘러싼 차별적 환경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차별 철폐의 첫 번째는 ‘어느’ 등급의 ‘몇’ 명에서, ‘무엇’이 필요한 ‘누구’로 시각을 변화시키는 근본적 변화이다. 이 변화에 따라 장애인들은 덩어리로서의 삶을 살게 될지, 개인의 삶을 살게 될지가 결정된다. 장애인들을 덩어리로 묶어 나누는 야만적 제도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 어찌 보면 국가가 장애인 개개인을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서 대하는 첫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장애인의 날을 맞았다. 장애인의 날이 진정 장애인 당사자의 삶에 뿌듯한 하루가 되려면 국가가 아니 지자체와 해당 단체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장애인들의 삶의 변화를 고려하고 그에 대한 위로부터 아래로 복지예산을 수반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등급제 폐지임을 이 지역 장애인을 둘러싼 이 사회의 면면이어야 함을 직시해야 한다.

 

2019년, 용인 지역은

용인시는 여전히 연중 가장 큰 행사로 ‘장애인의 날’의 행사를 꼽을 것이며, 그동안 보다 더 많은 정성을 다해 많은 장애인 단체의 회원들을 동원해 그들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용인지역의 장애인들을 모이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다고 해도 2019년은 다른 해와 뭐가 다른지 실내체육관에서 어떤 것이 더 잘 준비됐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여타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게 ‘장애인의 날’을 앞세워 누군가에게 ‘장애를 잘 극복했다’고 상을 줄 것이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선언한 원년의 해의 ‘장애인의 날’이니, 각종 선물에 인권에 가장된 문구를 새겨 (꽃다발 증정과 함께) 박수 행렬로 이어질 것으로 분명하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용인 시정에 묻는다. 장애인의 날 페스티벌과 여러 가지 세레모니를 통해 얼마나 많은 장애인의 삶과 생활의 면모를 끌어 올린 건지. 인권의 현장에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국가가 책임져라’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과 완전 상반되게, 국가의 책임을 개인의 공으로 대신하고 어두운 현실은 외면하고 그들의 피땀 흘린 노력만을 되풀이하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빛바랜 실정(?)은 아닌지 궁금하기만 하다.

중증 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함께하고, 장애시민운동을 지지하는 마음으로 장애인권위원의 참여해 주기를 용인지역에 제안하는 수지IL은 (이제는 이미 세상에 반쪽인, 어제의 우리가) 한강대교를 기어가던 2006년처럼, 수원역 육교에 매달려 이동권을 외치던 2016년처럼, 중증 장애인들의 그 외침,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다짐을 무작성 기대해 본다. 장애인차별철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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