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이 찾아오면서 야외 활동이 늘어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기다. 한국에서는 아직 대중화된 편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골프는 많은 미국인이 사랑하는 운동이다. 미국 대통령부터 평범한 직장인까지 휴일이나 여가 시간에 초록 잔디를 찾아 나선다.

미국 쉐링 푸라우 제약회사의 연구원이었던 버넷 박사도 골프를 즐기는 사람 중 한명이었다. 어느 날 버넷은 골프 친구인 데이비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연구하던 물질이 실험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는데, 그냥 포기하자니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동물 실험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버넷의 물질은 생체내의 ACAT라는 효소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콜레스테롤 흡수를 막아 고지혈증을 치료하는 신약의 핵심 개발물질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신약 개발은 전통적인 약초 추출 방법이나 무작위 실험 방법에서 벗어나 핵심 효소를 3차원 입체구조로 분석한 뒤 작용하는 중요 부분을 차단하는 물질을 컴퓨터를 이용해 새로운 화합물 구조를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수천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했던 과거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연구가 진행됐기 때문에 신약 개발은 훨씬 쉬워 보였다.

새롭게 찾아내는 화합 물질은 세포단계의 효과를 검증하고 동물실험, 임상실험 순으로 진행됐다. 버넷이 발견한 새로운 물질은 SCH-48461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가장 먼저 세포단계의 실험을 하게 됐는데 기대한 것과 달리 ACAT 차단효과가 아주 낮았다. ACAT 효소가 콜레스테롤 흡수의 핵심으로 생각했는데, 이 효소 차단 능력이 낮다는 것은 고지혈증 치료제로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동물 실험이나 임상 실험의 가치가 없는 즉, 실패한 물질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물질이 그냥 폐기되는 것이 아까웠던 버넷은 골프 친구인 데이비스에게 동물 실험을 부탁했던 것이다.

데이비스는 상급자 몰래 동물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콜레스테롤을 많이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오히려 ACAT 억제기능이 높았던 다른 물질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데이비스는 상급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임상실험을 더 확대하면서 SCH-48461 물질 개량에 나섰다.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2002년 새로운 신약이 개발됐다. 장에서 콜레스테롤 흡수를 억제하는 새로운 개념의 신약은 기존 고지혈증 치료제들과 함께 사용할 경우 부작용은 줄면서 효과는 더 좋았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버넷이 만들어낸 물질은 ACAT 효소를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효소인 장세포의 표피층에 위치한 NPC1L1에 영향을 줬던 것이었다. 베넷이 골프 친구 데이비스에게 선물로 준 물질은 이후 고지혈증 치료의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물질로 자리 잡고 현재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반면 핵심효소로 생각했던 ACAT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 왔다. 임상 실험에서 혈중 콜레스테롤이 낮아지기는 했지만 심혈관 질환 발생률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던 많은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손실을 내면서 연구 진행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콜레스테롤이 낮아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심혈관 질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약초를 물에 끓여 치료성분을 녹여내서 추출하던 전통적인 방법은 천연 성분의 부작용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임상에서 바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더 좋은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성공과 실패의 반복이었다. 현재 화학 구조식을 분석하고 컴퓨터까지 동원되는 시대에서도 여전히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으며 많은 실패 끝에 우연한 계기로 새로운 물질이 발견되기도 한다. 우연이라는 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말이 과언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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