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밍이 푸른 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1940년대 약품으로 개발되면서 많은 생명을 구하기 시작했다. 1940년 또 다른 곰팡이에서 결핵 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이 분리되면서 곰팡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곰팡이 연구에 뛰어들었고 바야흐로 곰팡이 시대가 열렸다.

일본의 아키라 엔도는 플레밍 위인전을 읽으면서 페니실린 발견에 감명을 받은 젊은 과학자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산쿄 회사에 취직한 뒤 곰팡이 연구에 집중했고 새로운 효소를 발견했다. 1966년 포상으로 미국 연수를 가게 된 아키라 엔도는 미국 뉴욕에 살면서 많은 미국인들이 칼로리가 높은 식사를 하고, 비만 등으로 심혈관 질환에 시달리는 것을 목격했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게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간 아키라 엔도는 곰팡이를 이용한 연구 목표를 항생제에서 고지혈증 치료제로 바꿨다.

곰팡이가 사람 피부에 기생하기 위해서 피부층을 뚫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막는 물질이 분비되고 있었다. 아키라 엔도는 곰팡이가 분비하는 물질에 주목했고 하나씩 분리해서 실험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실험으로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곰팡이 분비물질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저해하는 물질만 따로 분리해서 정제해야 했고, 곰팡이 종류마다 콜레스테롤 합성을 낮추는 능력은 서로 달랐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연구는 수년 동안 이어졌고 1972년 여름 교토 곡물가게에서 얻은 청록색 곰팡이에서 다른 것보다 높은 효과를 가진 물질을 발견했다.

청록색 곰팡이에서 고지혈증치료제가 발견됐다.

3800번의 실험 끝에 발견한 콤팩틴은 놀랍게도 영국 과학자들이 이미 발견한 물질이었다. 곰팡이에서 항생제를 찾던 영국 과학자들은 콤팩틴을 발견한 뒤에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나 큰 효과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나쳤다. 아키라 엔도 역시 쥐를 이용한 첫 번째 실험에서 혈중 콜레스테롤을 낮추는데 실패했다. 그러나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 연구를 한 끝에 쥐가 아닌 다른 동물인 닭, 강아지, 원숭이에서는 큰 효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영국 과학자들은 쥐 실험만 하고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콤팩틴의 효과를 몰랐던 것이다.

고지혈증 치료제 개발이 거의 성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사람에게 독성이 없는지 안정성 검사가 남아 있었다. 장기간에 걸친 안정성 연구가 진행됐다. 수년간의 관찰과 연구 끝에 일부 동물에서 임파선 종양이 발견됐다. 1980년 콤팩틴은 의약품 개발이 중단됐다.

의약품 안정성을 강조했던 이유는 1960년 트리파나놀 사건 때문이었다. 새로운 고지혈증 치료제로 각광 받으면서 등장한 트리파나놀은 시판 후 2년 만에 수백 명이 시력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부작용을 발생시키면서 퇴출당했다. 이후 수십 년간 고지혈증 치료제 개발이 중지될 정도였다. 트리파라놀 쇼크로 신약 개발에 안정성이 더욱 강조됐고, 효과보다는 부작용 연구에 더 많은 연구비가 들어갔다.

콤팩틴은 신약 개발에 실패했지만 비슷한 시기 산쿄와 연구를 공유하던 미국의 머크사는 다른 곰팡이에서 콤팩틴과 유사한 물질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1978년 발견된 메비놀린이라고 불리는 이 물질은 10년간의 연구와 안정성 검증을 모두 통과해 1986년 고지혈증 치료제로 나오게 됐다.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스타틴 계열의 약품이다. 이후 콤팩틴과 메비놀린을 근간으로 수많은 개량 신약들이 쏟아져 나오고 시작했다. 고지혈증 환자가 조절되기 시작하면서 심혈관 환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고지혈증 치료제는 장기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연구 개발과정 뿐 아니라 시판된 이후에도 안정성 문제로 판매 중지되는 경우가 있다. 1972년 곰팡이에서 고지혈증 치료 물질이 발견된 지 14년이 지난 1986년에서야 비로소 의약품으로써 판매가 가능했다. 많은 약초나 약재들에서 질병의 치료 성분이 함유돼 있을 수 있으나 불순물을 제거하고 장기 복용시 안정성 여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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