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사각패턴 시리즈 대표작

서양화가 박유경 작가 옆에는 ‘코드’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그의 작품의 주요 모티브인 의자나 사각 패턴은 마치 어떤 의미를 숨기고 있는 ‘부호’ 같다. 비밀스럽고 신비해 작품이 의미하는 뭔가를 그 패턴의 규칙 속에서 찾아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박유경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그는 순간의 느낌이나 감성으로 그리는 작가라기보다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붓을 드는 작가다. 내성적이고 열정적이며 늘 완벽을 추구한다.

박유경 작가는 특히 작품보다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화가다. 자기 자신을 향한 끝없는 탐구는 결국 단순하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패턴을 통해 표출된다. 관람객들은 작품을 보며 때로 ‘편안함’을 때로 ‘활기’를 느낀다. 박 작가가 나열하는 일정한 패턴과 그에 덧입힌 감각적인 색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초기 작품인 의자 시리즈에서 내면의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방식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가로서의 삶은 줄곧 ‘자아’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 박 작가는 풍경이나 정물의 아름다움을 그리는 대신 내 안의 나에게 집중했고 마음 한 구석 어디엔가 존재하고 있는 의자라는 상징물을 발견해냈다. 의자는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휴식과 같은 존재이며 동시에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다. 작품 속 의자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와 깊게 소통하기를 바라는 속마음’이었던 셈이다.

“제 작품 속 의자는 늘 실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개념의 의자였어요. 처음엔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렸고 점점 누군가와 깊게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겼죠. 작품 안에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마음과 그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그대로 나왔던 거예요.”

의자 시리즈는 이후 사각패턴 시리즈로 변모했다. 사방이 굳게 닫혀있는 형상의 완벽한 사각형은 박유경 작가가 초기보다 더 자신만의 세계에 강하게 갇혀 있던 시기 나온 작품들이다.

사각이라는 닫힌 공간을 반복하는 작업은 사실 또 다른 무한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의식적으로 반복되는 그만의 코드를 통해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출했다. 자아를 향한 끝없는 질문과 완벽함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이 정사각형의 사각패턴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때론 강렬한 색으로 때론 사각의 특이한 배열 방식으로 완성됐다. 사각패턴 시리즈는 현재 박유경 작가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박 작가가 지난해부터 선보이고 있는 밥 시리즈는 그의 시선이 ‘갇혀있는 나 자신’에서 한층 넓어졌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밥은 우리가 늘 먹는 ‘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영혼의 양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건강한 육체와 영혼을 채울 하얀 밥을 한가득 담고 있는 그릇엔 화가 박유경을 상징하는 사각 패턴을 심었다.

“나 자신이 건강해야 가족을 챙기고 타인을 챙길 수 있잖아요. 인생을 잘 살아보자. 나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주위를 채우고 싶다. 그게 지금 현재 제 자신의 가장 큰 과제죠.”

박유경 작가는 쉼 없이 달려오던 시간을 잠시 멈추기 위해 지난해 2년여 간 운영하던 갤러리 사업을 접었다. 매달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버거워 작품에 집중하기도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앞으로 5년 후 스스로를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매진하겠다고 했다. 작품보다 자신의 인생에 집중하는 방식은 여전하다. 연극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준비와 연습, 시행착오가 뒤따라야 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작품은 맨 마지막 단계다. 그가 또다시 붓을 드는 순간을 숨죽여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기보다는 기대가 앞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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