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용인시민신문에 ‘의장님, 그때 어디에 계셨습니까’란 제목의 기고글이 실렸다. 신문 제작을 위해 수차례 교정을 보기 때문에 내용을 단순화 시키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글쓴이는 시민들이 필요로 할 때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물었던 것이다. 흔히 선출직 공무원은 시민 대표라고 말하곤 한다. 시민을 대표해 일하는 시의원들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있냐고 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기자 역시 용인에서 일어나는 굵직한 사안을 두고 의원 생각을 듣기 위해 간간히 시의회를 찾는다. 그만큼 정치인은 꼭 필요한 취재원이다. 하지만 그들 입에서 명확한 답변을 듣기는 쉽지 않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법한 데도 의원들은 오히려 기자 생각을 묻는다. 기자 짧은 소견이 의정활동에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이쯤 되면 정치인의 좌우명이 ‘침묵은 금’은 아닐까하고 추측을 해봄직하다. 반대로 침묵을 과감히 깨고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때도 있다. 용인시가 유치 직전까지 도달한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 유치 결의안’이나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용인 유치 지지 결의안’에 용인시의회가 한목소리를 낸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확실한 명분이 있는 사안이다. 용인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찬성하는 ‘절대 선’이니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며 오히려 반동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용인 발전을 위해 정치활동을 하는 그들 입장에서 용인에 이익이 되는 사안에 적극 찬성하는 것은 당연하다. 근데 아쉽게도 절대 공감 받을 사안이 아니면 정치인들은 다시 침묵모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 지지를 의식해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맞다. 의견이 팽팽한 사안을 두고 한쪽 입장만 대변하는 정치인에게 ‘참 잘했어요’란 평을 내리는 것도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애매한 입장을 보이는 정치인을 무작정 이해만 해야 하나.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소신이 있어야 한다. 소신이란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어떤 상황을 확실히 믿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용인을 대표해 정치활동을 하고 있는 국회의원‧시‧도의원들의 떠올려 본다. 임기를 시작한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 초선의원이 있는가하면, 10년이 훌쩍 넘도록 시민을 대표해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인도 있다. 이상하게도 정치 경력과는 무관하게 제도권에 들어가면 비슷한 노선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초록이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지 못한 어떤 색과 동색이 되는 것이다. 흔히 정치판을 두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는 아닐까.

두 패로 갈라진 유권자 모두를 잡아야 한다는 욕심에 정치인은 명확한 색을 띄는 것을 싫어한다. 아니 색을 버리는 것이다. ‘침묵은 금’이란 좌우명을 마음에 담고 정치활동을 하는 시작점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맞춰 용인에서도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용인을 대표하는 독립투사 김혁 장군의 어록이 낭송됐다.

“하늘 빛 구름 그림자 아래 흩어진 내 마음 바로 잡아 어찌 위국충정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당시 독립투사는 철학자이자 선각자이며, 교육자에다 군인이며 또 정치가 노릇을 했다. 흔히 말하는 공공의 이익 즉 나라를 되찾는다는 절대 공익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의 정치는 무엇일까. 정치는 선거용이 아니다. 정치는 시민과 대화를 하기 위한 수단이다. 때문에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정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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