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민신문
상단여백
HOME 연재기사 김현정 교수의 오페라이야기
오페라 노르마(Norma)와 마리아 칼라스
  • 김현정(수원대 음대 교수, 오페라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26 09:23
  • 댓글 0

오페라 2막
작곡가 : 빈첸초 벨리니(1801~1835)
대본가 : 펠리체 로마니(1788~1865)
원작 : 수메의 유아살인
초연 : 1831년 10월 26일 밀라노 라 스칼라극장
초연가수 : 지우디타 파스타, 지우리아 그리시, 도메니코 돈첼리, 카를로 빌라

 

오페라 애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마리아 칼라스가 어떤 사람인가는 안다. 마리아 칼라스는 그런 사람이다. 칼라스는 ‘No Before, No after Callas’란 말을 남길 정도로 남과 비교가 되지 않는 오페라 가수였다. 팝의 세계에서 마이클 잭슨이 전무후무한 가수로 자리매김 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데뷔하자마자 과거 기라성 같은 전설의 오페라 가수들의 이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녀 등장 이후에 등장한 후배 가수들도 그녀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디바’라고 한다. 요즈음에는 Diva(디바)란 표현을 아무한테나 붙이지만 필자는 칼라스만을 진정한 디바로 인정하고 싶다. 시로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시성이라고 하고, 문학의 최고 경지에 오른 사람을 문호라고 하듯이 노래로 최고경지에 오른 사람을 디바라고 한다면, 마리아 칼라스를 빼고는 어느 누구도 디바라고 불릴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대표작은 오페라 ‘노르마’다. 노르마는 고대 갈리아 지방의 드루이디 신(드루이디교 : 그리스도교 이전에 갈리아 지방의 브리타니아 산간 주민들이 믿었던 고대 켈트족의 종교) 을 모시는 여사제에 얼킨 얘기를 주요 테마로 하고 있다.

‘노르마’는 신에게 순결을 서약한 여사제다. 신과 대화도 할 수 있는 엄청난 파워를 소유한 사제다. 오페라 ‘노르마’의 배경은 기원전 50년경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갈리아 지방이다. 이때는 카이사르가 로마의 집정관을 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오페라 상에서 당시 로마군의 총독은 폴리오네라는 사람이었다. 노르마는 총독과 사이에 두 명의 아이까지 두고 있으면서도 이를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사랑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은 채 총독인 폴리오네는 또 다른 여사제 아달지사에게 반해 사랑을 나눈다. 이를 알게 된 노르마는 불같은 질투심을 느낀다. 신에게 동의만 얻으면 언제든지 로마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그다. 지금까지 폴리오네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참아 왔던 전쟁을 미뤄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폴리오네의 배신을 눈치 채는 순간 그의 분노는 폭발했다. 신에게 로마와의 전쟁을 부추긴다.

그녀가 부른 아리아 ‘정결한 여신’은 그녀의 목소리와 성격과 신적인 테크닉이 한데 어울려 많은 감동을 줬기에 영원한 노르마 대 칼라스로 기억됐다. 이후 웬만한 소프라노는 감히 함부로 불러보지도 못하는 금지곡이 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오페라에서 노르마는 전혀 정결하지 못했다는 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YourObsever.com 홈페이지 화면 캡쳐.

특히 마리아 칼라스의 카리스마적인 목소리와 연기력은 그녀가 디바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연기력은 정말 실성한 사람 같았으며 대포알을 뿜는 듯 분노를 온몸과 목소리로 표현했다. 훗날 그녀가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에게 버림받고(오나시스는 칼라스와 동거하던 중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제클린 케네디에게 반해 칼라스를 헌신짝처럼 버린다) 끝나 버린 그녀의 인생과 오페라의 주인공인 노르마의 스토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흡사하다. 흔히 비극 오페라를 너무 많이 부르면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처럼 그녀의 불행한 말년도 어느 정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노르마는 다시 폴리오네와 결합하려고 갖가지 노력을 다하지만 이미 마음이 떠난 폴리오네는 말을 듣지 않고 아달지사마저 그녀의 정부 폴리오네의 냉정함에 분노해 노르마의 편을 든다. 하지만 오히려 폴리오네는 아달지사와 도망가려고 한다. 여기에 노르마는 절망과 분노가 격에 달해 징을 치며 국민을 부른 후(이 장면은 정말 압권으로 기억된다. 칼라스의 눈은 실제 여사제처럼 보임) 마지막 신의 동의를 얻었다고 선포하며 로마인들을 무참히 살해 할 것을 명령한다.

이쯤에 노르마의 시녀인 클로틸데가 들어와서 한 로마군이 여사제를 납치해 가려고 했다고 말하고 곧바로 폴리오네가 들어온다. 다시 한 번 폴리오네에게 갈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르마는 그녀의 아버지와 모든 이들 앞에서 한 여사제가 신의 법을 어겼음을 공표하고 바로 자신이 죄인임을 밝힌다. 폴리오네와의 관계를 알리고 폴리오네는 끝까지 그의 정부인 아달지사의 이름을 말하지 않은 노르마에게 크게 감동해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고 두 사람은 함께 화형장으로 향한다.

마리아 칼라스는 오나시스에게 버림받은 후 몇 년간 순회공연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녀는 심신과 목소리를 영원히 되찾지 못했고, 파리의 아파트에서 혼자 쓸쓸하게 죽었다. 시신은 화장해 그리스 앞바다에 뿌려졌다. 이 또한 노르마와 비슷한 죽음일까? 그리스 사람이었던 칼라스는 카르마란 표현을 자주 쓴 운명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녀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관주의적이면서 암울했지만, 그녀의 특이한 성격과 절규를 외치는 듯한 음성과 함께 어우러진 광기에 가까운 연기는 오페라에선 너무나 돋보였기에 영원한 디바로 기억되고 있다.

김현정(수원대 음대 교수, 오페라칼럼니스트)  webmaster@yongin21.co.kr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현정(수원대 음대 교수, 오페라칼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제1회 처인승첩 기념 전국 백일장 수상자 명단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