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객지생활을 한 필자에게 명절이면 으레 고향을 찾아야만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게 고향은 뭔가 특별함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5일장에 대한 기억은 아련하다.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설레게 했으며, 무엇이든지 있을 것 같은 만물상에 대한 기대감도 참 좋았다. 어릴 적 기억에만 남아 있던 마을 어르신들은 얼굴에 주름을 여러 개 붙이고 반가운 웃음으로 귀향을 반겨주니 20년 타향 생활에 후회감도 밀려올 법하다.

경남 북단에 밀양이라는 소도시가 고향이다. 용인시보다 1년여 앞선 1995년 시로 승격한 도농복합도시다. 당시 인구가 13만이다. 지금은 10만을 간신히 유지될 만큼 인구유출이 심하다. 하지만 필자 고향은 이상하리 만큼 인구가 줄지 않고 있다. 아니 최근에는 오히려 늘고 있단다. 실제 최근 몇 해 동안 산적하던 시골 마을 곳곳에 빌라가 들어서더니 급기야 햄버거 전문매장가지 문을 열었다. 이유가 있다. 인근에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일자리가 늘고, 그들 생활에 필요한 갖가지 시설들이 우후죽순처럼 입지한 것이다.

며칠 전 설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고향을 지키는 독수리 오형제격인 지인들이 그동안 고향의 변화과정을 말해주더니 인구 1만명도 되지 않는 이곳에 어마무시(?)한 규모의 매장이 문을 열었다며 자랑하듯 말했다.

소문을 듣고 한번 찾아 나섰다. 고층이 없어 시야 확보가 쉬운 시골 풍경인지라 3층 높이의 매장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들어서는 길부터 달랐다. 어림잡아 100대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이미 만차였다. 실내는 거짓말 조금 보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구 100만명인 용인시에 내놔도 손색없을 정도다.

아마 고향 인근에 산업단지 기초공사를 시작한 그때부터인 것 같다. 고향의 특별함이 점전 퇴색되기 시작한 것이. 인구 유출이 심해 그나마 명색이라도 유지하고 있던 5일장은 텅텅 비기 시작했다. 허허벌판인양 넓은 평야 곳곳에는 빌라와 음식점이 자리 잡았다. 거리에서 만나지는 사람들은 오랜 전 함께 학교를 다니던 동창이나 마을 어르신보다 외국 어디선가 온 이름 모를 노동자가 더 많았다.

5일장을 찾던 사람이 없으니 손녀 명절 용돈이라도 벌고자 시장을 찾은 노파들도 발길을 끊었고, 한평생 밥벌이를 책임지던 논밭을 판 전직 농민들은 고향을 떠났고, 이방인이 그 빈 공간을 대신했다.

그렇다고 장터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8살 된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아내와 함께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는 최근 문을 연 어마무시(?)한 규모의 매장 뿐 아니라 농협이 운영하는 마트, 한때 이곳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또 다른 매장이 있다.

그렇게 20여분 만에 도착한 시골장터는 예상보다는 시끌했다. 때마침 5일장까지 더해져 대목 분위기가 한껏 풍겼다. 함께 간 아내는 인파에 놀라고, 아이는 뭐가 재밌는지 연신 희희낙락이었다.

“그래도 시골 장터는 명절 대목을 느낄 수 있구나”란 생각을 만끽하기도 부족한 시간인 듯하다. 왕성한 장터가 파시가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40년 넘도록 시장에서 장사를 해온 자칭 ‘5일장 전문가’인 지인 모친에게 물었다. 대목인데 장사는 어땠는지.

“5일장도 없고, 명절 대목도 없데이.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장터에 오는 거지. 물건은 말키 큰 마트에서 산다안카나. 야야 잘 생각해봐라. 니도 올 때 선물 도시에서 다 사왔제. 여와가꼬 뭐하나 산거 있나. 우리 아들도 새로 생긴 마트 가서 선물 샀다더라. 근데 그 마트 주인도 도시 사람이라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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