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한해를 정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지난 12월 31일. 늦게까지 외래 진료를 하던 젊은 교수가 환자의 공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번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명의 의사가 환자에게 피살됐다. 치료과정이나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주차장까지 따라가서 공격한 것이다. 2018년 여름에는 응급실에서 전공의를 구타해서 큰 부상이 발생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는 의료진을 위협하는가 하면 강릉에서는 조현병 환자가 망치로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어느 정도 예견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의료진을 공격하는 행위는 의료진 개인뿐 아니라 그 의료진이 치료하는 환자에 대한 위협이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수술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를 위협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드라마가 현실이 되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12월 27일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해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등 처벌조항이 강화됐다. 법 개정에 모든 국민이 찬성한 것은 아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의사들 먼저 진료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며 환자 폭력이 무서우면 어떻게 의사를 하겠냐는 비상식적인 발언도 있었다. 의료진을 불신하는 국민이 많다면 법을 아무리 강화해도 응급실과 진료실을 안전하게 만들지 못한다. 국민과 의료진의 신뢰가 더 중요할 것이다.

언론기사와 시민단체들의 주장을 보면 의료 불신이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정말 그럴까? 의사들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약간 다르다. 한국종합사회조사에 의하면 2003년~2010년 의료계에 대한 신뢰는 78.1%, 2014년에는 79.1%로 높은 수준이었다. 2017년 의료정책연구소에서 실시한 의사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90.7%로 전문직 중 가장 높았다. 다른 조사 결과도 있다. 엠브레인트렌드가 2018년 전국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자본 및 전문가 권위와 관련한 설문조사에서 36.1%만이 의사를 신뢰한다고 응답하고 있다. 물론 해당 조사에서도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의 평균 26.1%인 것에 비하면 높은 편이다.

의료 현장에서도 환자들이 신뢰하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이 높다는 느낌은 일부 시민단체와 언론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의료진 폭행을 당연하게 여기는 방송은 무의식적인 심리 상태를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의료계도 안전하고 좋은 의료환경과 국민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고 모든 치료과정이 완벽할 수는 없다.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 진료량과 낮은 의료비용은 좋은 의료환경이 아니다.

한국 흉부외과 명의가 한순간의 실수로 의료사고로 처벌받고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이번 사건으로 정부와 보건당국은 무엇인가 새로운 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법과 경찰이 의료진을 보호할 수도 없고 보호받아야 할 상황도 바람직할 수 없다. 법과 경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의료진의 굳건한 신뢰 회복이다. 자신의 몸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의료기관과 의료진이 많아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2019년은 신뢰 회복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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