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느낌의 한국화로

철학적 질문 답 끌어내

 

‘나는 누구일까.’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면서 풀리지 않는 물음 중 하나가 이 질문일 것이다. 나는 누군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 끝없는 질문을 그림에 담아온 작가가 있다. 한국화가 이보름이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아는 나는 많이 다르잖아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나를 어떻게 화폭에 표현해야할까 수많은 고민을 했었죠.”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던 이 작가였다. 미술로 생각을 말하는 ‘조형언어’에 더 익숙한 그에게도 수수께끼 같은 질문의 답을 그림에 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보름 작가는 숙명 같은 그 질문을 마치 차근차근 숙제를 해결하듯 2010년부터 ‘가장 멀리 있는 나’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풀어나갔다.

제목은 작품과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잘 어울리는 윤후명의 소설 <가장 멀리 있는 나>를 그대로 빌려와 붙였다. 평소 머리맡에 둘 정도로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 제목을 보는 순간 다른 어떤 제목도 붙일 수 없었다고 했다.

“제목 자체가 제 작품에 담고 싶은 내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어요. 결국 윤 작가님께 메일을 보내 소설 제목을 그림에 붙여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았죠.”

이 작가의 ‘가장 멀리 있는 나’는 말 그대로 나 자신이면서도 나조차 모르는 자아를 그리고 있다.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간절히 찾고 싶은 나 자신은 한국화라는 전통기법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수묵화와 채색화를 교묘하게 엮음으로써 새롭게 해석됐다.

그림 속, 먹으로 상징되는 ‘나’는 다양한 색을 입힌 그림자나 옷을 통해 ‘또 다른 나’와 함께 존재한다. 한국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따르되 그림 자체는 현대적으로 풀어냈다는 점도 묘한 매력이다. 먹과 물감, 물의 농담으로 풀어내는 선과 면은 이 작가가 ‘가장 멀리 있는 나’라는 철학적 주제에 얼마나 고뇌하며 진지하게 다가갔는지를 알 수 있다. 한 끝 한 끝마다 치밀하고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보름 '가장 멀리 있는 나' 2016

‘가장 멀리 있는 나’는 2015년 이 작가가 밤늦은 시각 서울의 한양도성을 우연히 걷게 되면서 재탄생했다. 밤의 산은 온갖 생기가 넘쳤던 낮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갑자기 태고시절로 돌아간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 그곳에서 이보름 작가는 진정한 내 안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이후 그는 틈만 나면 인근 산에 올랐다.

“동 트기 직전의 하늘은 온통 푸른빛이에요. 주변은 고요하고 도시의 불빛은 별빛처럼 빛나죠. 그 풍경을 보다 보면 어느덧 밖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어요.”

이후 무채색이던 ‘가장 멀리 있는 나’의 바탕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해가 오르기 직전 세상 모든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잠시 나를 돌아보게 하는 깊은 푸름이다.

깊은 바다 속처럼 고요하고 신비한 푸름은 ‘나’에 대한 질문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줬다. 더 깊이 있는 탐색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누구일까. 작가는 10년 넘게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수만 번 되뇌었을 것이다. 그 풀리지 않는 물음에 내 안의 누군가가 답한다.

‘이 아름다운 하늘을 봐. 샛별처럼 빛나는 불빛을 봐.’

작가 이보름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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