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단체 머내여지도, 관계기관과 협력
수지구청 문서고 ‘범죄인명부’서 확인
동부보훈지청,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수지구청 1층 문서고에서 발견한 '범죄인 명부'. 명부에는 3.29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태형 90대의 형을 받은 16명의 기록이 상세히 남아있었다. 사진 경기동부보훈지청 제공.

수지구 동천동과 고기동을 뜻하는 ‘머내’ 지역의 역사와 지리 연구모임 ‘머내여지도(대표 오유경)’가 3·29 머내만세운동의 숨은 주역들을 찾아냈다.

머내여지도는 지난해 3·29머내만세운동을 재현한 행사를 진행한 이후 국가보훈처 경기동부보훈지청(지청장 박용주),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원장 한시준 교수) 등과 함께 당시 기록 발굴에 힘써왔다. 그러던 중 수지구청 1층 문서고에서 ‘범죄인 명부’라는 이름의 일제강점기 명부를 발견한 것이다.

명부에는 3·29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태형 90대의 형을 받은 16명의 기록이 상세히 남아있었다. 범죄인명부는 당시 만세운동 참가자의 죄명을 ‘보안법 위반’, 형의 명칭을 ‘태 90’, 즉결청명을 ‘용인헌병분대’로 기록하고 있다. 또 16명의 성명과 당시 연령, 주소, 직업, 즉결 일자 등을 상세히 기록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공적 자료가 됐다.

경기동부보훈지청은 12일 이번에 발굴된 16명과 함께 당시 만세운동에 참가해 일본 헌병에 피살된 최우돌 선생을 포함해 총 17명에 대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이는 지역 민간단체인 머내여지도 등 주민들과 관계기관이 힘을 모아 일제에 의해 희생된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머내여지도 팀은 지난해 자발적인 고증작업을 통해 머내만세운동 재현행사를 진행하고 이후 독립운동가 후손을 직접 수소문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꾸준히 역사 발굴을 진행해왔다. 이 같은 노력을 알게 된 경기동부보훈지청과 관계기관이 힘을 모으면서 16명의 독립운동가 명부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발굴된 16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1919년 3·29 머내만세운동은 약 1500명이 참여할 정도로 대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고기리 안종각 선생이 용인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일 결심을 하며 시작됐다. 참여한 주민들은 각자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움직였고 집집마다 한 명 이상씩 참여할 정도로 참여율도 높았다.

머내여지도 연구자료집에 따르면 고기리에서 만세운동을 도모한 안종각 선생은 가까운 이웃 홍재택 선생에게 뜻을 전했다. 그리고 동천리를 포함한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홍 선생은 마을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 구장(지금의 이장)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고기리 구장 이덕균 선생을 찾아 설득해 주민들을 규합했다.

당시 200여명의 주민들이 참여한 시위대는 풍덕천면사무소에 이르러 600여 군중으로 불어났다. 일본경찰의 총격으로 안종각 선생과 최우돌 선생이 숨지고 이덕균 선생은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밖에 홍재택 등 16명은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안종각 선생과 체포된 이덕균 선생은 공적사실이 확인돼 1990년과 1991년 각각 애족장과 애국장에 추서됐다.

지금까지 머내만세운동의 연구는 일제로부터 형을 받은 이덕균, 안종각 선생에 집중돼 있었고 이외 태형을 받은 16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다. 이들의 공적은 이번 수지구청 범죄인명부 발견으로 인정받게 됐다. 당시 체포돼 태형을 받은 고기리 주민은 홍재택, 이도해 2명이었고 동천리 주민은 강춘석, 권병선, 김영석, 김원배, 김현주, 남정찬, 윤만쇠, 윤승보, 이달순, 이희대, 정원규, 진암회, 천산옥, 최충신 등 1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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