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복합형 도시의 보호소 유기견 중 3분의 2가 넘는 ‘이런 개들’이라고 하면, 주로 환경적으로나 마인드 면에서 홀대받고, 결국 개고기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큰 마당견입니다. 도심 외곽의 마당견들, 무개념한 번식으로 새끼 낳으면 여기저기 한 마리씩 나눠주고 나눠 받고. 귀엽다고 받은 새끼강아지가 대형견으로 커서 감당이 안돼 키울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무책임과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유기하거나 도살감으로 처분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가 어느 날 사라진 정다웠던 마당견들을 떠올려봅니다. 외가댁 바둑이와 독구도 어느 날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어디 갔냐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어른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좋은 곳에 줬다” 였습니다. 그곳이 어디냐고 더 물을 수도 없던 어린아이였고, 사실을 들은들 이해하지 못할 어린아이였겠죠. 

“하얀 눈 위에 구두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발자욱”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꼬리치고 반갑다고 멍멍멍”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바둑이도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학교길에 마중 나와서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온다. 딸랑딸랑 딸랑 딸랑딸랑 딸랑”

요즘 초등생에게도 익숙한 동요일 겁니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 배우며 즐겁게 따라 불렀던 어른들이 만든 이런 동요들이, 성인이 돼 유기견 봉사자가 된 저에게 이토록 슬프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노랫말처럼 어린아이에게나 가족들에게 이미 반려견으로서 충분했던 마당견이었습니다. 아파트 생활이 보편화되며 요크셔테리어 등을 비롯한 강아지 인형 같은 외모의 외국 소형 품종견들이 ‘애완견’이라고 일컬어지며 유행처럼 길러지게 됐고, 실내견으로 자리 잡게 되었죠. 더불어 외국 소형품종 애완견들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 분양업도 성시를 이루며 급기야 이런 견종들을 찍어내는 강아지 공장이 성업하게 됐고요. 

개 식용문화와 외국품종 위주의 애완견 문화. 둘 다 바람직하지 않은 극적인 문화차이에서 비롯됐습니다. ‘반려견’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요즘 이런 품종의 애완견이 주로 반려견이라는 인식과 지위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애완견’이란 개념 속에는 이미 ‘유기 가능성’이 잠재돼 있죠. 마치 완구처럼 가지고 놀다 싫증나고 망가지면 버릴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버려져 보호소로 들어오는 애완견들을 비롯해 처참한 마당견들까지 악착같이 살려가며 가족 찾기를 해주는 과정에서 엉망인 우리나라 동물보호의 현실도 함께 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물복지와 마인드, 동물보호법에 있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될 그날을 염원합니다. 1미터 남짓 목줄에 묶여 음식물쓰레기로 연명하다 도살당하거나 보호소에 들어와 안락사당하는 수만 마리 마당견, 믹스견에 대한 편견이 없어지고, 쉽게 키우다 쉽게 버려지는 이런 개들이 줄어들고,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는 그날을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저의 세대에서는 이뤄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살리는 이 과정은 소중하고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동물을, 그리고 개를 사랑하는 지금, 우리나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또 어떻게 자라나게 될까요.


 

이번 호를 끝으로 ‘기미연의 유기동물 이야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현장에서 안락사 대신 유기견의 가족 찾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반려문화와 유기동물의 권리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는 기미연 회장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유기동물 연재가 반려동물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보는 시간이었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