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즈음부터 토요일 아침 가족회의를 시작했다. 주제와 상관없이 재잘재잘하던 것이 어느 순간 제법 긴 시간 두런두런할 수 있을 만큼 숙련이 됐다. 부모가 자주 쓰는 표현은 어김없이 꺼냈으며, 하물며 농담 분위기마저 아빠와 매우 흡사했다. 아내는 딸에게 40대 아저씨의 모습이 보인다며 걱정한다.  

아이가 자라는 것은 눈에 보인다고 한다. 그만큼 쑥쑥 자란다는 뜻이 아니겠나. <엄빠일기> 연재를 생각한 것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 아빠의 심정을 말하고 싶어서다. 아이 모습에서 느끼는 공감대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받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1년 여동안 딸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어느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여기다가도 되돌아서면 아이는 한 뼘 더 커 있었다. 순간순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 순간이 과거가 되는 것 역시 순간이었다.   

그 사이 숫자 100까지 읽지도 못하던 딸은 1000까지 읽을 수(만) 있다. 구구단도 (보고)외운다. 어린이집과 책에서 봤다며 속담(비슷한 것)도 제법 읊조린다. 받아쓰기도 (받침 있는 것 빼고)잘 한다. 올 1월에 산 옷은 (살이 쪄)몸에 꽉 낀다. (아빠가 인정하지 않지만)좋아하는 남자 동생도 생겼단다. 

딸은 <엄빠일기>가 실린 첫 신문을 본 이후 나름 재밌는 일이 있으면 물어왔다. “아빠 이것은 엄빠일기에 싣지 마” 어떤 날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신문에 실어 달라며 청탁도 해온다. 기자가 보기에는 아무런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게다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인데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부터 언급하지 않았다. 기억에서 잊혀진 것이다. 딸의 관심사는 다양하지만 기간은 짧다. 딸이 계속해서 <엄빠일기>에 관심을 가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이의 의미 없는 행동도 기록하고 싶은 게 부모 된 심정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딸이 원했다면 빈 공책에라도 뭔가 남겼을 게다. 

3년 동안 매일 아침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사랑하는 딸 넌 용감하고, 누구보다 똑똑해”란 당부와 바람이 담긴 말은 어느 순간 주문이 됐으며, 딸은 이젠 ‘됐고’라고 답한다. 저녁 7시가 넘으면 홀로 어린이집에 남아 주눅 들어 있던 딸은 어느 순간부턴가 간식을 달라고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한동안 버리는 것을 싫어하더니 이제는 과감해졌다. 간혹 딸 방에서 버렸다고 생각한 물건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버린 물건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부모 몰래 쓰레기통을 확인해 버려진 것들을 모조리 챙겨 오는 것으로 짐작된다.  

곧 학생이 된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 몇 분 안 걸린다. 그래도 아빠는 걱정이 태산이다. 문을 열다 밖에 갇히는 건 아닐까. 2차선 도로를 건너다 악어를 만나진 않을까. 교실 문을 열면 친구들이 ‘사랑해’라고 외쳐 기절하진 않을까. 급식을 먹다 너무 맛있어 눈물을 흘리면 어쩌나. 아무래도 딸을 홀로 등교시키는 것은 아니지 싶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심정은 뉘라도 같을 것이다. 어떤 이는 신을 대신해 부모가 아이 곁에 있다고 하더라. 부모가 아이 곁에 있는 이유는 신을 대신해서가 아니다. 사랑을 주기 위해서다. 딸이 싫다고 하면 어쩔까. 그땐 <엄빠일기>를 대신해 <나빠일기>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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