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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이경성] 인생의 고난 극복해가는 여정을 화폭에 담다

대부분 예술가들의 평생 고민 중 하나는 ‘자신만의 기법’을 찾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구나 그릴 수 있고 따라할 수 있는 작품은 생명이 길지 않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며 특유의 방식을 찾아나서는 긴 여정이 예술가의 인생이 다.

이경성 작가는 매 작품 발표마다 ‘완판’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 있는 작가다. 그 비결이라면 떨기나무 처음사랑 시리즈, 소멸침식 기법 등 그를 정의할 그만의 정체성이 뚜렷하다는데 있다.

그러나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작가 역시 한동안 단 한 작품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만큼 깊은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운명 같은 만남은 어느 여름날 찾아왔다. 머리를 식힐 겸 오른 뒷산 팔각정에서 무심코 산 아래를 바라봤을 때 용인초등학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 작가는 당시를 ‘갑자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다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작가의 눈에 들어온 초등학교와 운동장. 그는 불현듯 ‘여기가 세상의 전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이 작가는 용인 지역의 초등학교를 돌며 교정을 화폭에 담았다. 초등학교 교문은 인간의 탄생, 운동장은 수많은 인생의 다양한 모습들, 학교 앞 깃발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상징한다. 삶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작품에 담은 ‘떨기나무 처음사랑’ 시리즈의 시작이었다.

초등학교를 인생에 비유한 떨기나무 시리즈는 이후 학교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중앙에 그려 넣으면서 진화했다. 주변에 다양한 인간사를 빼곡하게 그려 넣은 것은 공통적이다. 예수의 얼굴 안에는 때로 소녀가 앉아 기도를 하고, 때로는 집이 숨어있기도 하다.

용인초를 담은 첫 떨기나무 시리즈는 그를 대표하는 ‘소멸침식 기법’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수십 겹의 한지를 물에 녹여 말리고 부조를 이루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그러다 이후 그의 대부분 작품의 주재료인 석회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석회는 물질 특성 상 온도와 습도를 조절할 수 있다. 수백년 전 유럽 성당 벽화는 석회를 두껍게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그 고유 특성 덕분에 세월이 지나도 그림의 색과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이 작가는 석회의 그런 매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법이야 수많은 기법 중 하나인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 기법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작업과 연결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소멸침식 기법은 그렇게 완성됐다. 먼저 석회를 바른 견고한 바탕에 스케치를 하고 부조를 만든 후, 채색을 한다. 바탕까지 완성된 그림을 석회로 전부 덮고 일정 시간을 기다린 후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갈아내고 녹여내고 닦아내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이렇듯 긴 과정을 거치는데 신기하게도 그 과정은 인생을 닮아있다. 원색의 그림은 태어났을 때 본래 모습, 그 위를 덮는 석회는 살아가면서 쌓이는 상처와 사연들, 석회를 닦아내는 과정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과정인 것이다.

이경성 '떨기나무 처음사랑' 2015

알록달록 예쁜 색은 석회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기도 하고 일부 희미하게나마 원형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아련하고 희미하지만 그 가치만은 잃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죄와 실수투성이지만 이를 이겨내고 일어서려는 인간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석회는 일반 물감과 달리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빛을 흡수하고 간직한다. 그래서일까. 이경성 작가의 작품은 세상의 빛을 온전히 담고 있는 듯 따뜻하다. 온통 눈으로 가득 찬 풍경 조차도 오히려 온기가 느껴질 정도로 정답고 포근하다. 이 작가는 붓 터치를 한번 할 때마다 기도하듯 한다고 했다.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위로와 안식을 전하고픈 간절함일 것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한 시인이 눈 오는 소리를 이렇게 표현했더랬다. 빨강 노랑 파랑 화려한 색이 소복이 쌓인 눈에 모두 가려졌다. 다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이경성 작가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따뜻한 한마디가 아닐까.

 

황연실 기자  silsil47@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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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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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성 2018-12-28 17:37:34

    아 황기자님의 성심을 다한 기사를보니 가슴뭉클하고 깊은 감명을 받앗습니다. 제작업의 여정을 잘 정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잘 간직하겟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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