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을 감안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1년은 365일이라고 표현한다. 2018년 1년도 이제 20여일 남았다. 연말이 다가왔다는 의미다. 한해를 마무리할 즈음되면 으레 어수선해지기 마련이다. 학생들은 기말시험과 방학에, 어른들은 송년회니 각종 모임으로 일정이 빼곡하기 일쑤다. 곳곳에서 안타까운 사고 소식도 들린다. 그나마 각종 봉사활동을 담은 훈훈한 풍경에 따듯한 세상에 감사해하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연말이면 으레 들려오는 많은 소식에 중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어려운’이다. 김장을 담가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졌다는 식이다. 한 가지 짚어볼까 한다. 어려운의 어원인 어렵다의 사전적 의미에 ‘궁핍하여 살기가 고생스럽다’란 뜻도 있다. 다소 부정적인 의미가 담겼다. 분명 우리 주위에는 궁핍해 살기 힘든 이웃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려운, 살기가 고생스러운 사람일까. 강한 의지 또 다른 행복을 가지고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 가치기준은 천차만별이다. 때문에 누구도 타인 삶을 평가할 수 없다.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가는 이웃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1월부터 싣기 시작한 <살기 좋은 용인 ‘새해’에는 나부터 시작하자>가 이번 글로 마무리 된다. 10여회 실으니 연말이 됐다. 애초 계획한 월 1회에 거의 맞춘 셈이다. 애초 취지는 ‘살기 좋은 용인’을 만들기 위해 함께 동참하자는 의미였다. 특별한 일부 집단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시민이 살기 좋은 용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첫 회인 불법주차에서 최근에 실린 규제완화에 따른 난개발 문제까지 기사 한번 나갔다고 쉽사리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에 불법 주차된 차량과 교차로 꼬리 물기는 여전했다. 오히려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살기 좋은 용인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첩경은 있다. 배려나 양보 사랑 등도 중요하지만 1년간 취재과정에서 느낀 가장 절박한 것은 ‘관심’이다.     

수도권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경기남부 땅덩어리 큰 동네 용인이 100만 대도시로 성장했다. 여전히 고층 아파트는 들어서고 있다. 용인에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살아온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정도로 줄었다. 100만 인구가 내뿜는 에너지에 연말 풍경은 뭔가 시끌하게 느껴지지만 시민들은 부족함을 말한다. 그 부족함의 본질은 무관심일지 모른다. 

처인구 김량장동 일대를 시가지로 했던 30여년 전. 용인은 고만고만했다. 희소식이든 비소식이든 한 사람을 거치면 두 사람이 알고, 두 사람을 거치면 네 사람이 알 정도였다. 그런 이유에서 시민들은 짧은 시간에 희비를 함께 나눌 수 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면 그 희비는 다시 복제돼 정주의식을 키우는 자양분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용인은 달라졌다. 기쁜 소식은 한사람을 거치면 남의 이야기로 치부돼, 사라지기 일쑤고, 슬픈 소식은 애써 외면해야 골치 아픈 소식이었다. 희비를 나눌 사람은 점점 줄었다. 

인구 100만명이 각각 섬이 되어 군락을 이룬 용인은 분명 살기 좋은 곳은 아니다. 한해를 마무리할 요즘이면 생각해야 할 사람, 고마워해야 할 사람, 걱정해야 할 사람,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 용인이 되길 희망해본다. 그런 용인이라면 어려운 사람이 아닌 서로 껴안을 수 있는 이웃사촌이 있어 포근하고, 한 발짝 한 발짝을 걱정해주는 안전하고, 100만가지 소소한 이야기가 오가며 정을 나누고. 올해 연말은 나부터 포근하고, 안전하고, 나누기를 시작하자.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