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처인구 원삼에 있는 용담저수지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태교둘레길이라 해서 저수지 주변에 산책로를 잘 만들어놓았다. 건너편 야트막한 동산의 단풍과 물에 비치는 데칼코마니를 보며 감탄하고 걷는 호숫가 산책길은 너무나 멋진 풍경이었다. 약속 장소에 있던 큰 상수리나무에서는 제법 굵은 도토리가 떨어졌다. 동글동글한 게 어쩜 이리 예쁜 도토리가 있을까 하며 걷다가 잣나무들을 지나 또 다른 상수리나무 앞에 섰다. 키 큰 나무줄기엔 초록색 잎들이 상수리나무 꼭대기를 향해 손을 뻗듯이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언뜻 보니 노박덩굴 잎과 비슷했다. 노박덩굴인가보다 하며 가볍게 지나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줄기에 가시가 있었다. 꽤 따끔한 가시였다. 노박덩굴에 가시가 있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이건 뭐지? 같이 있던 홍은정 샘이 “푼지나무에요”라고 알려줬다. 푼지나무? 첨 들어보는 나무 이름이었다. 처음 보는 나무에 호기심이 발동해 이것저것 자세히 살펴봤다.

알고 보니 푼지나무는 노박덩굴과 나무였다. 그래서 그리 비슷했구나. 두 나무를 구분하는 단서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잎 밑에 달린 턱잎 모습이었다. 노박덩굴의 턱잎은 그냥 굽은 모양인데 반해, 푼지나무 턱잎은 더 세게 변해 가시가 됐다. 주변에 대한 경계심이 더 강한 모양이다. 사람으로 치면 더 예민하다고 할까? 자기방어본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참동안 푼지나무를 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노박덩굴은 주변 나무를 감고 올라가 자신의 줄기를 바깥으로 뻗는 모습으로 자란다. 그런데 푼지나무는 마치 담쟁이처럼 나무줄기를 기어 올라가는 형태로 줄기를 뻗는다. ‘기근’ 다른 말로 ‘공기뿌리’라 해서 줄기 부분에 뿌리처럼 생긴 조직이 나와 큰 나무들에 달라붙어 자랄 때 지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래서 잎과 꽃, 열매는 노박덩굴과 닮았지만, 기근이 있어 다른 나무에 기어 올라가며 붙어 자랄 때는 담쟁이덩굴이나 송악을 닮았다.

푼지나무는 분지나무, 청다래넌출이라고도 한다. 분지나무는 푼지나무와 발음이 비슷하니 그럴듯하나 청다래넌출은 갑자기 뜬금없었다. 이름이 너무 어색해 어떻게 그런 이름을 얻게 됐는지 유추해봤다. 청다래는 푸른 열매가 달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푼지나무 열매를 보고 그런 이름이 붙었으리라 생각됐다. 넌출이란 길게 뻗어 나가 늘어진 식물 줄기를 뜻하는 말로 대부분 덩굴식물들의 길게 뻗은 줄기를 말한다. 등나무나 칡, 오이 호박 줄기를 생각해보면 맞다. 즉 청다래넌출이란 푸른 열매가 달리며 길게 뻗어나가 늘어진 줄기를 갖는 식물이란 뜻이다. 그러나 푼지나무는 왜 푼지인지 모르겠다. 발음도 그렇고 참 독특한 이름이다.

식물을 공부한다는 필자도 이럴진대 하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푼지나무를 알고 있을까? 몰라서 그렇지 알고 보면 푼지나무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산기슭이나 마을 근처에서 자라는데 바위에 기대거나 이웃 나무를 기어 올라가며 길이 5m가량 자란다고 한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털 같은 톱니가 있고, 뒷면에 털이 있다. 어린 잎은 데쳐서 나물로도 먹을 수 있다. 줄기와 잎자루 부근에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필자도 처음 푼지나무를 보고 대뜸 만졌다가 따끔한 가시에 깜짝 놀랐다. 이에 반해 노박덩굴은 잎에 털이 없고, 잎 가장자리가 동글동글하게 돼 있으며 가시도 없다. 가을에 노랗게 물든다고 하는데 필자가 만난 푼지나무는 11월 초임에도 초록색 잎을 갖고 있었다. 추위에 강한가 보다. 더 추워져야 노랗게 단풍이 들려나.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내려가 겨울의 시작이 보이는 요즘 어쩜 단풍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꽃은 화살나무를 비롯한 노박덩굴과의 나무가 그렇듯 노란빛을 띤 녹색으로 6월에 작게 핀다. 열매는 둥글고 늦가을에 노란색으로 익으며 세 갈래로 갈라져서 주황색 씨앗이 보인다. 너무 귀엽고 예쁜 열매로 겨울에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 이 또한 노박덩굴과 비슷하다. 어쩜 푼지나무를 보고도 노박덩굴이겠거니 하며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에 더 예쁜 노박덩굴들을 보는 즐거움이 커졌다. 노박이니 푼지니 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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