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남동쪽 브릭스톤에 작은 폐목재 등 쓰레기를 재활용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협동공간이 있다. 런던 남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모아 의자, 책장 등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들어 저렴하게 팔거나 저소득 주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리메리커리다. 이 협동공간은 지역주민 뿐 아니라 예술가와 기업 등에 열려 있는 커뮤니티공간이기도 하다. 제작자는 시설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은퇴자 등 이 곳을 이용하는 회원들은 회비를 내고 다양한 기술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지난달 24일 기자들이 찾은 리메이커리에는 매립지로 가야 할 수많은 폐자재가 쌓여 있었다. 창고에는 쓰레기라고해도 무방할만한 나무와 천, 각종 전선 등으로 가득했다. 누가 리메이커리를 운영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왜 이같은 공간을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지하 주차장이었던 리메이커리는 북쪽 브릭스톤과 캠버웰 사이에 위치한 1000m²( 300평) 크기의 공간이다. 건물은 당초 지방의회 소유였는데,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이곳을 리메이커리가 적은 비용으로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작은 환경단체였던 리메이커리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지금과 같은 협동공유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주민단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낸 것이다. 

리메이커리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마크 씨는 리메이커리를 “작업하고 기술을 배우는 곳이지만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곳”이라고 말했다. 리메이커리는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 이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리메이커리는 사람들에게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쓰레기에 대한 가치를 재창출하는데 있다. 이는 버려지는 쓰레기 재활용뿐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목표다. 쓰레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재활용된 쓰레기로 소외된 계층에게 기회를 주거나 이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 곳은 지역 주민들은 물론 재소자에게도 기술을 가르쳐주고 있다. 마크 씨는 “리메이커리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친구나 가족이 되는, 서로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말했다.

리메이커리에서 활동하기 전에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또 재활용되는지 몰랐다는 줄리에 씨가 리메이커리 공간을 돌며 각 공간(워크숍)에서 하는 일에 대해 설명했다. 나무를 재단하는 공간, 의지를 조립하는 공간, 본드 등을 붙이는 공간 등 4개의 다른 기능을 하는 공간이 있었다. 이 곳에서는 자전거 수리 전문가가 자전리 수리 기술을 가르쳐주기도 하고, 목공이 재활용 나무를 이용해 의자 등을 만드는 기술도 배우고 가르친다. 
 

물론, 공간 운영을 위해 회원들로부터 회비(월 10시간에 18파운드, 약 2만7000원)를 받지만 소외계층은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줄리에 씨는 “버려지는 나무 등이 리메이커리에 오지 않았으면 쓰레기 매립지에 갔을 것”이라고 말해 리메이커리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재활용 가능 쓰레기는 회원들이 화물차를 빌려서 수거하고 있는데, 수거 과정도 교육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리메이커리에는 비영리단체뿐 아니라 파트너십으로 다양한 기업이 함께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테리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테리 씨는 “훈련을 시키되 중요한 것은 소외된 계층을 제대로 훈련시켜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에게 간단한 기술도 가르치고 있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는 이유는 아파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이다. 이웃 간 우호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소외계층을 돕는 기업정신이며 그런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램버스 지역의 식량 활동을 지원하는 인크레더블 이더블도 리메이커리에 참여하고 있다. 램버스 책임자인 제니 씨는 비어 있는 공공장소나 방치돼 있는 자투리 공간에 텃밭이나 정원을 조성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경찰서 옆에 있는 공터에 토마토를 재배한 것이 시작이다. 지금은 31만8000명이 램버스에 참여하고 있을 정도로 큰 조직이 됐다. “인크레더블 이더블의 핵심요소는 비즈니스, 지역사회, 배움”이라는 제니 씨는 학교에서 농작물이 어떻게 재배되는지 가르쳐주는 도시농부 역할도 하고 있다.
 

“혼자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래서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도시의 공간이나 지역이 잘될 수 있게 지원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현재 180개에 이르는 지역의 크고 작은 단체가 서로 돕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직접 재배해서 낭비하지 않고 좋은 음식을 먹어보자는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는 제니 씨의 설명에서도 리메이커리의 또 다른 역할을 알 수 있었다. 
협동조합의 한 형태인 리메이커리. 협동공간을 통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의 참여 속에 브릭스톤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인터뷰>“새로운 방식의 소유구조 통한 공동체 복원 필요”

재개발 정책이 도시재생으로 바뀌긴 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여전하다. 해법을 제시한다면.
“영국
역시 오래 전부터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정부 주도 하에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했다. 1983년부터 본격화 됐는데 원주민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런던의 경우 코인스트리트로 저소득층 위한 공공임대주택이 있었던 곳이다. 전후 도시 복구과정에서 도심 곳곳에 노동자를 위해 공동주택을 공급했는데, 1980년대 정부의 사업이 정책에 따라 코인스트리트와 같은 환경이 좋지 않은 단지를 중심으로 민영화가 이뤄졌다. 공동주택에는 이주민 등 소외계층이 몰렸는데 지자체가 민간 부동산 개발업자와 손잡으면서 개발이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면서 공동체 파괴가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제트리피게이션은 하나의 정책으로 가능하지 않다.”

슬럼화 됐던 코인스트리트의 자산화를 통한 재생사업이 재생의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는데.
“코인스트리트는 10년 간 개발 반대운동으로 민간 개발업자의 개발계획을 포기시키고 마을만들기 사업체를 설립, 런던시로부터 부지를 저렴하게 구입해 임대주택 등을 개발하는 등 재생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과 제도 속에 진행된 코인스트리트 사례를 한국에 접목시키기에는 한계가 많다.” 

도시재생이든 공동체 마을만들기든 그 지역에서 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세입자들은 언젠가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이 운동의 주체가 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이사 가면 그만이다. 서울시의 경우 과반이 세입자들인데 가장 중요한 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한 주거 임차에 대한 문제는 정작 못 건드리고 있다. 주거 임차인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울러 주택을 자산 증식의 도구로 인식하지 않도록 의식전환도 필요하다.”

영국의 도시재생 사례를 도입하려는 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코인스트리트를 방문한 걸로 알고 있는데, 주민운동의 역사, 사민주의적 요소 등의 맥락 속에서 정부와 거리를 두고 자치와 자생운동이 존재했던 곳이다. 코인스트리트는 사회주의 그룹이 만들었는데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고, 문제 의식에 기반해서 사회를 바꿀 수 없을까 하는 데에서 설립됐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회에 대한 기여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특히 현 보수당 정부에서 로컬리즘 액트(지역주권법)를 주창하고 있는데, 기법과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접근만으론 한계가 있다. 공동체를 지키려는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코인스트리트가 가능했던 것은 지역공동체가 토지를 소유해서 공동으로 개발하고 운영할 수 있다. 런던은 자가 소유는 허용해도 마음대로 매각할 수 없다. 코인스트리트 모델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는 이유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공동체를 통한 양극화 해소는 쉽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서울 포기를 선언해야 한다. 새로운 방식의 소유구조를 통한 공동체 복원은 서울보다 지방에서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망해도 서울은 안 망한다. 영국 역시 런던만 성장했을 뿐 지방 도시는 경제회복이 되지 않았다. 착시효과일 뿐이다. 새로운 방식의 토지소유, 공동체 토지신탁 등과 같이 새로운 실험이 가능한 곳은 아마도 지방도시일 것이다. 그런 노력에 각 지역신문이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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