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관산에 있는 용인자연휴양림에 다녀왔다. 이미 단풍이 빨갛게 지고도 남을 때이지만 정광산은 아직도 푸릇해 보였다. 침엽수가 많고, 그 외에도 단풍이 갈색인 도토리나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숲에 화려한 단풍을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이럴 수도 있구나!’ 새롭게 깨달았다. 

11월 정관산에 가면 계곡 어디쯤 풍게나무 아래에 떨어진 나뭇잎을 들추던 기억이 난다. 풍게나무나 팽나무 잎을 먹고 자라는 홍점알락나비와 왕오색나비의 애벌레를 발견했던 때이다. 이 나비들은 떨어진 낙엽에 붙어 겨울을 보낸다. 애벌레로 겨울을 난다는 것도 그때는 참 신선한 충격이었다. 애벌레는 초록색이고 통통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 줄만 알았던 것이다. 무식했다. 곤충들은 신기하게도 자기가 좋아하는 먹이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 애호랑나비는 꼭 족도리풀에 알을 낳고, 그 알을 깨고 나온 애벌레는 꼭 족도리풀의 잎을 먹고 자란다. 산호랑나비는 산초나무에 알을 낳는다. 이런 관계를 이루는 식물과 곤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 

풍게나무는 잎의 아랫부분까지 톱니 모양의 거치(잎 가장자리 모양)가 있다. 풍게나무와 매우 비슷한 팽나무는 윗부분까지 거치가 있다. 물론 사는 지역이 구분돼 함께 살지 않는다. 식물을 구분할 때 식물이 어디에 사는지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용인에 살고 있는 해당화나 동백은 가져다 심은 것이 틀림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런 간단하고도 명료한 차이로 종이 나눠지는 것이 식물을 알아가는 묘미이면서 너무 세세한 것으로 구분하니 알아야 할 것이 많은 것은 또 어려운 부분이다. 

우리나라 중부지역 이상에 느티나무가 있다면 풍게나무 친구인 팽나무는 남쪽 지방에서 마을나무나 당산나무로 많이 볼 수 있다. 팽나무는 느티나무와 같은 느릅나무 무리이다. 가지가 풍성하게 벌어지고 작은 잎들이 빼곡하게 붙어있어서 멀리서 보면 둥근 나무 모양을 한다. 멀리에서 보기에도 좋고, 나무 가까이에서는 빈틈없는 그늘로 사람들이 좋아할 만 하다. 느티나무와 팽나무 모두 좋은 목재로도 사용하니 가까이하기에 흠 없는 나무이다. 요즘은 남쪽 지방뿐 아니라 용인에서도 조경용으로 심은 팽나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가을에 떨어진 짙은 주황색 열매가 봄에 싹을 틔우는 것도 많이 봤다. 팽나무 주변에서 어린 팽나무를 데려다가 집에서 심고 키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팽나무하면 생각나는 곳은 제주도이다. 하는 일이 이렇다 보니 필자에겐 겨울이 1년을 정리하며 쉬는 기간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더라도 겨울에 주로 다니는데 제주도 명월리의 팽나무군락은 겨울에 봐도 정말 아름답다. 팽나무는 오래될수록 줄기가 멋지게 변하는데 오래된 팽나무가 작은 개천을 따라 주욱 늘어선 모습이 대단하다. 오래된 나무는 나무 혼자 살지 않는다. 이끼옷도 입게 되고, 콩짜개덩굴이나 고사리들도 한 몸처럼 살아간다. 식물뿐 아니라 다람쥐나 여러 작은 새들의 집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숲이 주는 의미는 상상 이상이다. 개발이 중요한 요즘의 풍경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더 인상적이다. 이 팽나무군락은 제주도에서도 특별하게 관리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도로를 넓히기 위해 오래된 삼나무림의 일부를 제거했다가 문제가 됐다. 현재 우회도로를 만드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비자림, 앞에 이야기한 팽나무군락, 또 우회도로 건설에서 보여주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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