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프랑스의 의사 장 랜드리는 팔다리 끝부터 시작되는 마비 증상이 점점 위로 올라오는 증상을 가진 환자를 경험하게 된다. 랜드리가 치료한 환자는 5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은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환자가 사망한 후 시행된 부검에서 어떠한 이상 소견도 관찰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괴질이었다. 랜드리는 과거 기록들을 찾아내 유사한 경우가 더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질병이라고 생각했다. 랜드리 상행성 마비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 질환은 유감스럽게도 적절한 치료방법이 없었다. 피부 마사지와 온욕 요법 등을 실시했고, 스트라키닌이라는 각성제로 근육을 움직여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극약에 가까운 스트라키닌은 오히려 환자에게 더 안 좋은 결과를 초래했다.

1916년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프랑스의 의사였던 길랑과 바레, 스트롤은 프랑스 군의관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지가 마비돼 걷지 못하는 병사 2명을 진료하게 됐다. 두 병사는 별다른 치료도 없이 며칠간의 식사로 빠르게 회복됐다. 이 환자들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뇌척수액에서 백혈구와 같은 염증세포가 증가하지 않았는데 단백질은 증가됐다. 결핵과 같은 세균성 질환과는 다른 새로운 질병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이후 랜드리-길랑-바레-스트롤 증후군으로 불리었다. 이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길랑과 바레의 이름을 붙여 ‘길랑 바레 증후군’으로 불리게 됐다. 

길랑 바레 증후군은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드문 질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1976년 전혀 다른 형태의 길랑 바레 증후군 환자들이 발견됐다. 1976년 미국에서 유행한 독감은 전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던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유사하다는 발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휩싸였다. 즉각 독감 백신이 개발되고 포드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독감 환자들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 밖의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예방 접종 후 사지부위에 마비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길랑 바레 증후군이었다. 

드문 질환이었던 길랑 바레 증후군 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백신 접종은 중지되고 조사가 시작됐다. 1976년 미국에서 1000명의 길랑 바레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 중 절반인 500여 명이 예방접종 후 증상이 발병했다. 100만 명당 한 명 정도 발생하던 길랑 바레 증후군 환자가 백신 접종 후 10만 명당 한 명 꼴로 증가한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안전한 백신 제조에 힘을 기울이게 됐으며, 이후 1976년 때와 같은 높은 빈도의 길랑 바레 증후군 환자의 발생은 없었다.

백신의 안정성이 중요한 관심사로 대두되면서 안전한 예방백신을 제조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백신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에 대한 조사도 시작했다. 예방 접종은 면역력을 키워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부작용보다 이익이 훨씬 컸다. 초기 독감 백신은 백신 바이러스 전체를 사용했기 때문에 길랑 바레 증후군뿐 아니라 독감과 유사한 전신반응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됐다. 최근에는 핵심 물질만 사용해 부작용이 감소됐다. 

예방 접종은 몸이 건강할 때 실시하고 가벼운 감기 증상은 금기사항이 아니므로 반드시 진료 후 상담해서 결정해야 한다.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이 발생하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가벼운 발열이나 주사 부위 부종은 흔히 발생할 수 있으므로 무리한 신체활동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독감을 비롯해 많은 예방접종 백신들은 오랜 시간을 거쳐 점점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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