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긋불긋 단풍이 대단하다. 같은 종류의 나무인데도 같은 색깔의 나뭇잎은 없다. 한 그루의 나무 안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오묘하게 섞여 있다. 한 나무에 한 가지 색 단풍이 든다면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할까! 얼마나 비현실적일까? 지금 주변에는 노란색으로 물든 계수나무가 한창 솜사탕 냄새를 풍긴다. 그에 못지않게 노란색 단풍을 자랑하는 나무가 있다. 모감주나무이다. 

흔하게 듣는 이름이 아닌데, 요즘은 모감주나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지난번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수로 이 모감주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모감주나무에 꽃이 핀 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그 모습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란색에 붉은 띠를 두른 작은 꽃들이 여름의 나뭇잎보다 더 화려하게 나무를 뒤덮는다. 큰 나무에 피는 꽃들 중 단연 으뜸이다. 꽃이 많이 피니 당연히 열매도 많다. 여름 꽃도 황금빛이더니 가을 단풍은 더 짙은 황금빛이다. 모감주나무는 ‘번영’이란 의미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모감주나무도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지금은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에 걸쳐 자라는 식물이라고 넓게 생각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여러 곳에 오래된 모감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관리해서 좋은 군락을 유지한 경우도 있고, 자생하는 군락도 있다고 본다. 모감주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많은 곳이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것으로 봐선 바닷물을 이용해 열매가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사는 식물들이 소금에 견뎌내는 힘이 있듯이 모감주나무도 다른 식물들보다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모감주나무 열매는 꼭 꽈리처럼 생겼다. 열매 껍질은 얇고 속은 비어있어 풍선같은 역할을 하고, 그 안에 작고 검은 씨앗이 2~6개 붙어있다. 물에 떠서 이동하기에 알맞은 모양이다. 모감주나무는 공해에도 강하기 때문에 조경수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그 많은 나무의 수많은 열매들이 바닥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그 에너지가 아깝다. 떠내려갈 물이 없는 곳에 있는 나무들이 너무 안타깝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런 모감주나무의 까만 씨앗으로 염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까맣고 작은 씨앗을 수없이 엮어 염주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했을 것을 생각하니 바다 근처에 살지 않는 나무들도 참 의미 있게 쓰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떨어진 모감주나무 씨앗을 한번 엮어 봐야겠다. 모감주나무의 이름은 지금은 쓰지 않는 무환자(無患子)로 옛말인 ‘모관쥬’에서 왔다고 본다. 무환자는 말 그대로 ‘병을 없애는 열매’를 뜻한다. 신통방통한 열매였나 보다. 식물 이름의 근원을 찾는 일은 한자를 쓰던 시대 우리나라 옛말을 찾는 일과 많이 겹친다. 지금은 연결 짓기 힘든 말들이 한자와 함께 생각하면 풀리는 경우들이 종종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도 깊은 관계가 있으니 당연히 일본말에서 온 식물 이름도 참 많다. 사람이 사회적으로 정해놓은 경계를 무시하고 식물들은 살아간다. 지리적으로 고립되거나 단절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연속적인 분포를 보이는 것이다. 이번에 북으로 간 10년생 모감주나무는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숲을 다니는 필자에게는 이미 북한에도 있을 모감주나무와 지리적으로 고립된 우리나라 모감주나무가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오랜만에 만남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것이라면, 식물들의 만남은 앞으로의 ‘번영’을 의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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