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방식 고집 수제 막칼 제조
40여년 이어온 명맥 끊길 위기
전수자 지원 등 시의 관심 절실

유튜브 용인시민방송YSB 영상 보기 https://youtu.be/3igI4KJGKfo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 인적 드문 곳에서 40년 동안 오로지 수제 칼만 만들어온 이가 있다. 용인의 마지막 대장장이이자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좌전칼’을 만들고 있는 김영환(68·사진) 씨다. 간판조차 없는 공장(김영환씨는 대장간이라고 부른다) 안에는 아직 칼자루를 끼지 않은 꽤나 묵직한 생선용 막칼 수십 개가 한쪽에 놓여 있었다. 김영환씨를 찾은 건 주말이었지만 이미 한 차례 화덕에서 무쇠를 달궜는지 내부에는 열기가 남아 있었다.

김씨가 만들고 있는 ‘좌전칼’은 어시장이나 수산시장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막칼로 불린다. 막칼은 녹이 슬지만 가정에서 흔히 쓰는 스테인리스 칼보다 강도가 센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칼과 달리 미세하게마나 칼 모양이 모두 다르다. 그렇다고 육안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지는 않지만. 김영환씨는 대장간이나 칼 도·소매상은 물론, 막칼을 쓰는 어시장이나 수산시장에서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꽤나 알려진 장인이다. 물론 그가 만든 ‘좌전칼’ 역시 수산업계 등에서는 최고의 브랜드 칼이다.

김씨가 처음 대장간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1965년 8월 30일이다. 5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날짜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으로 학교에 늦게 들어간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무렵, 그의 나이 16살 때였다. 

“어려운 시절이었어요. 초등학교 졸업도 못하고 밥 먹여 준다고 해서 간 곳이 구백암(지금의 가창리)에 있는 낫 공장이었지요. 당시 용인중학교 시험에서 3등으로 합격했지만 부친께서 학비를 대줄 형편이 안돼 대장간을 가게 됐는데, 꽁보리밥도 먹지 못하던 시절, 보리가 약간 섞인 흰 쌀밥을 주더라구요.(웃음)”

호미나 낫자루 깎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한 김씨는 손재주가 남달라 3개월 만에 이천의 한 철공소로 제의를 받아 옮겼다. 이른바 스카우트 된 것이다. 그렇게 3년여 간 대여섯 곳에서 스카우트 돼 일하다 19살 지금의 김영환과 좌전칼을 있게 해준 사람을 만났다.

“서울 용두동 김규복 사장 밑에서 칼을 두드리고 모양을 내는 기술을 배웠는데 그 때 처음 칼을 접했어요. 당시에는 기술이 있으면 여기저기에 데리고 가려는 곳이 많았는데, 칼 만드는 대장간이며 철공소는 안 가본 곳이 없을 거예요.”

전국을 떠돌다 시흥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한 김씨는 첫째 딸을 낳은 지 2년 만에 자신만의 칼을 만들어 보겠다며 고향 용인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28살이었다.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집을 나선지 12년만인 1978년 현재 터에 15평 남짓 공장을 짓고 완성품을 만들어 납품하기 시작했다. 인천 어시장이며 노량진 수산시장, 화곡동 도매상, 대여섯 곳의 대장간은 40년 째 김씨와 거래하고 있는 장기 고객이다. 아마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막칼에 있어서는 ‘달인’ ‘장인’ ‘명인’이라도 해도 손색이 없을 김영환씨다.

‘좌전칼’은 좋은 칼을 만들겠다는 호기심과 연구하는 자세와 더불어 경험과 노하우가 만들어낸 결정체다. 하지만 좌전칼과 김씨의 손때가 묻어 있는 대장간을 볼 수 있는 날도 오래 남지 않았다. 그의 나이 68세를 감안하면 길어야 10여년이다. 아무도 김씨가 갖고 있는 좌전칼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두 세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남아 있지 못하더라구요. 고교 졸업을 앞둔 실습생 둘이 왔었는데 하루도 못 있고 갔어요. 힘든 건 둘째 치고 (얼굴 등이)시커멓게 되는게 이유였어요. 그래서 젊은 사람이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면 공장은 물론, 경험과 노하우를 모두 전수할 생각이예요.”

좌전칼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크지만 김영환씨는 한 때 대장간을 접으려고 했다. 하지만 40년 거래처의 요청으로 다시금 망치를 들었단다. “(내게)그만두면 우린 어떻게 하냐고 하더군요. 중국산을 써야 하는데 질이 떨어져 못 쓴다고 하길래 차마 그만두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김영환씨는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용인의 유일한 칼 브랜드인 ‘좌전칼’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이어질 수 있도록 시에서 지원 방안을 모색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좌전칼 기술이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시에서 이수자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라도 이어지는게 유일한 바람이에요.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이대로 없어지는 게 아쉽기만 해요.”

젊어서는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부끄러워서 아랫동네에도 내려가지 못했다던 김영환씨의 ‘좌전칼’이 브랜드를 넘어 용인의 자부심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