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미술관으로 지역 문화 확산 이루고파”

화가 권숙자는 이제 작가보다는 관장으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아졌다. 권 작가가 20여년 간 꿈꿔왔던 공간인 처인구 이동읍 사립 안젤리미술관을 2015년 개관하면서 부터다. 2011년 착공 후 무려 3년 6개월이 지나 완성된 미술관은 구석구석 벽돌 하나까지 권 작가의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겼다.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을 지역에서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사립 미술관 운영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는 어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죠. 그래도 이 공간을 통해 지역 문화 확산을 이룬다는 사명만큼은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안젤리미술관은 ‘한국 대표작가 55인전’ 등 굵직한 전시를 비롯해 이경재, 허만갑 등 지역 작가 개인전, 다양한 교육, 공모전 등을 꾸준히 열어왔다. 2016년부터 시작한 안젤리미술관 어린이 공모전은 3회째인 올해 700여명의 작품이 모일 만큼 명실공히 지역 대표 어린이 미술 대회로 자리 잡았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역시 공동작업을 통해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 입소문을 타고 인근 지역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다.

한 미술관 관장이기에 앞서 권 작가는 40년 회화 작업을 이어온 예술가다. 권 작가는 작가노트를 통해 “태어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끼게 되는 희노애락과의 모든 만남을 ‘이 세상의 산책’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권숙자 작가를 정의할 수 있는 주제를 꼽으라면 단연 ‘아름다운 자연, 아담과 이브’다. 세상 그 무엇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안에 항상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작가만의 느낌과 생각을 전통성을 버린 다양한 오브제(재료)를 사용해 자유롭게 표현해왔다.

캔버스 위 천과 망사, 금속 등을 사용한 작품을 비롯해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마나 부채, 화판을 오려 그 위에 작업하기도 했다. 쌀 보리 조개껍질 헝겊 금박지 동판 철사 등 다양한 재료는 권 작가의 작품 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2004년 연작인 ‘자연과 인간 1, 2, 3’은 그의 자유로운 기법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탈리아 사르데니아 섬을 여행한 후 자연 속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담은 대작 300호 연작은 작업 중 한쪽 팔에 부상을 입었을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었다. 당시 이 작품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살롱도톤’전에 초대돼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권숙자 작가가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작품들에 쓰인 재료들은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예술과 일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고 그림과 삶의 관계가 하나임을 의미하기도 하죠. 미술의 생활화를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었어요.”

사실 권 작가의 초기 작품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1980년대 초반 낙동강 섬에 자리한 문경 우망에서 완성한 작품들은 소나무 위에 하얗게 눈이 쌓인 모습, 목이 긴 하얀 새 무리의 모습들을 전통적 기법으로 묘사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세밀한 묘사는 조금씩 단순화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5~6년 사이 작품에서 보인 파격적인 변화는 오히려 권 작가의 확고한 작품적 소신을 잘 보여준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그 파격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화했다. 캔버스라는 평면에서 벗어나 릴리프(부조화) 기법으로 재료의 다양성을 꾀한 것이다.

“1991년 화실 안에서 작업을 하는데 밖에서 봄나들이를 떠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외로움이 엄습했죠.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멍하니 있을 때 갑자기 사방의 벽이 무너지는 환상을 경험했어요. 밖에 핀 꽃의 향기, 햇살, 바람이 무너진 벽을 통해 들어왔죠. 그 후부터 밖을 나가지 않아도 내 안에 모든 자연을 안을 수 있고 자연과 일체를 이루며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자연과 사람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진지하게 고민한 후 발산되는 권 작가의 독창성과 예술성은 제한을 두지 않은 부조화 기법으로 빛을 발했고 그렇게 꾸준히 발전해왔다.

지난달 21일부터 안젤리미술관에서는 권 작가가 37년 동안 후학을 양성해왔던 강남대학교 교수직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전시를 열고 있다. 초기부터 최근작까지 그의 작가인생을 돌아보는 전시다. 내년 2월까지 총 3부에 걸쳐 선보일 ‘권숙자 40년 회화세계 산책- 회상의 정원을 거닐다’는 대중에게도 잘 알려진 ‘자연과 인간’ ‘평화나누기’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작가로서의 창조적 열정을 풀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 것은 사실이에요. 이번에 교수직을 퇴임하면서 지난 40년을 돌아보는 전시회를 열고나니 그 열정이 다시 샘솟는 기분입니다. 앞으로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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