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얄라셩 얄라리 얄라…” 
 

정확한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것으로 알려진 가장 유명한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삶의 비애와 고뇌를 주된 내용으로 하며 당시 최대 히트곡이라 할 수 있다. 보면 욕심 부리지 않고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로 멀위랑 다래를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멀위가 바로 머루다. 머루는 포도와 비슷하고 다래는 키위와 비슷한데 머루와 다래는 우리나라에 원래부터 있었던 고유종이고, 포도와 키위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나무들이다. 포도가 일상과 더 가까워지면서 마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어 버리듯 머루는 산에 사는 포도 즉 야생포도를 뜻하게 됐다. 외국에서 들어온 키위는 참다래란 이름을 붙이며 우리 다래를 가짜 다래처럼 만들어버렸다. 기구하다. 

옛날 머루와 다래는 과일과 간식이 제대로 없었던 시대, 숲에 가면 공짜로 따먹을 수 있는 열매들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보다는 마트와 가게에서 먹을 것을 구하다보니 작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머루와 다래는 생산자에게 선택받지 못해 소비자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우리 먹을거리에서 도태돼 버렸다. 그래서 숲에서 머루나무와 다래나무를 보면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지면의 한계로 우선 머루나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머루나무를 보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머루속과 열매를 먹을 수 없는 개머루속으로 크게 구분된다. 머루속에 속하는 종류에는 왕머루·새머루·까마귀머루 등이 있다. 잎이 넓은 달걀 모양이고 아래가 하트모양인 왕머루, 잎 뒷면에 붉은 갈색 털이 나는 머루, 잎에 붉은 갈색 털이 빽빽이 나다가 곧 떨어지는 섬머루, 잎이 둥글고 3∼5개로 갈라지는 까마귀머루, 잎이 삼각 달걀 모양이거나 동그란 달걀 모양이며 작은 새머루로 구분한다. 

머루나무는 산기슭이나 계곡 사이의 숲 속에 살며 덩굴나무로 누군가를 감고 올라가며 줄기를 뻗는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특히 무릇과 둥글레의 뿌리와 함께 넣어 고와 구황식의 하나인 물곳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꽃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 황록색으로 피어 열매가 초록색으로 구슬처럼 달리고 가을이 되면 까맣게 익는다. 잘 익은 머루는 하얀 분이 나온다. 
머루의 줄기는 탄력이 좋아 지팡이를 만드는 데 썼다고 한다. 

머루나무 열매는 포도에 비해 그 알의 크기가 작다. 요즘 흔한 블루베리와 비슷하다. 또한 포도처럼 알이 빽빽하기보단 알알이 성기게 달렸다. 그래서인지 잘 익은 머루 맛은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져 있다. 안에 두세 개 들어있는 씨도 포도처럼 딱딱하고 크지 않아 그냥 알을 입에 넣고 함께 씹어 먹을 만하다. 단맛의 과육과 더불어 마지막에 씹히는 씨앗의 맛은 고소하기까지 하니 먹기에 꽤 괜찮다. 요즘 머루포도라 해서 포도와 머루의 중간형쯤으로 나오는데 머루처럼 알이 빽빽하기 보단 약간 성기게 달려 오히려 햇빛과 양분을 고루 받아 더 달콤하고 진한 맛이 난다. 
 

옛날 ‘머루와 다래’라는 문구 캐릭터가 있었다. 한복을 입은 순박한 소년의 모습을 한 머루와 다래라는 소녀였는데 아주 예뻤다. 또한 이름이 아주 토속적이면서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머루와 다래는 짝을 이뤄 기억됐다. 

작년 봄 백암장에 나가 머루나무 세 그루를 사와 마당에 심었다. 키가 1미터도 안되던 작은 나무들이었는데 올해는 줄기를 마구 뻗으며 키를 키우더니만 여름이 시작될 무렵 연두색 꽃을 피우더니 열매까지 달았다. 그 열매가 요즘 까맣게 익기 시작해 하나 둘 따먹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이제 곧 다래도 익을 것이다. 이 가을 머루와 다래가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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