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 때마다 툭, 툭 무거운 것이 떨어진다. 무슨 소리인가 두리번거리니 밑둥치가 한 아름 넘는 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진다. ‘맞으면 꽤 아프겠다’ 생각하며 나무그늘에서 나와 선다. 이미 봉선이 3개로 벌어진 열매는 떨어지면서 조각이 갈라진다. 반짝반짝 밤보다 예쁜 칠엽수 열매다. ‘칠엽수’는 말 그대로 7장의 작은 잎이 하나의 큰 잎을 만든다는 뜻이다. 하나를 줍고 옆을 보니 또 하나가, 그 옆에 또 하나가, 열매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라진 열매를 손으로 벌려 씨앗을 꺼냈다. 열댓 개 까고 나니 손끝이 아리다. 더 깠다가는 손에 마비가 올 것 같아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가로수나 조경수로 많이 심는 칠엽수는 처음 어린나무를 심었을 때 가지가 많거나 잎이 무성하지 않아 엉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된 칠엽수는 기둥 줄기가 굉장히 굵고 30m 이상 쭉 뻗어 올라간다. 가지도 넓고 잎이 크기 때문에 꽤 훌륭한 정원수이다. 꽃은 오동나무와 비슷하게 작고 예쁜 꽃이 고깔 모양으로 모여난다. 꽃차례 하나에서 많은 수의 꽃이 피는데 대부분 수꽃이고 아랫부분에 양성화가 몇 개 핀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열리는데 꽃차례 아랫부분에 몇 개의 열매가 달린 것을 보면 양성화에만 열매가 생긴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식물에는 은행나무처럼 암꽃과 수꽃이 다른 나무에 피는 경우, 으름덩굴처럼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피는 경우, 그리고 암술수술이 한꽃에서 성숙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꽃은 암술과 수술이 한꽃에 있는 경우이다. 칠엽수는 하나의 꽃차례에 수꽃과 양성화가 함께 있어 참 특이하다. 꽃가루 양을 많이 해서 수분의 확률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키가 큰 나무 위에 피는 꽃이다 보니 더 많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큰 꽃다발을 들고 있는 것도 같다. 유성화와 무성화가 함께 꽃송이를 이루는 산수국과 비슷하다.

칠엽수 열매 껍질을 까보면 그 안에 큰 씨앗이 하나 들어있다. 세 개로 쪼개지는 열매에서 세 개의 씨앗이 나올 것 같은데 의외이다. 실제로 칠엽수 꽃의 자방에는 6개의 배주(후에 씨앗이 되는 부분)가 있다. 하지만 그것 중 튼튼한 것만 살아남은 것이다. 어떤 나무의 씨앗은 제사상에 올리는 밤 크기 정도로 크고, 또 다른 나무의 것은 도토리 만하게 작기도 하다. 그 크기가 너무 차이가 나다보니 작은 칠엽수 열매가 싹을 틔울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
 

바닥에 잔디가 깔린 공원 칠엽수는 상태가 좋고 튼실하다. 하지만 도로 주변의 나무는 잎이 갈색으로 변한 것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증상은 페스탈로치아 잎마름병이다. 그 원인은 수분스트레스인데, 숲에서 칠엽수가 자라는 곳이 계곡 부근인 것을 보면 이해가 쉽다. 시원한 숲의 계곡부에 살던 나무는 도시의 뜨거운 공기와 건조함을 견디기 힘든 것이다. 가로수를 심을 때 그 식물 특성을 생각하고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더 멋진 가로수길이나 공원을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기흥구에 있는 경기도박물관에는 커다란 칠엽수가 여러 그루 있다. 가로수로 만나는 빈약한 칠엽수가 아닌 튼튼하고 시원스런 칠엽수이다. 9월 내내 바람이 불 때마다 열매가 떨어질 것이다. 열매가 다 떨어지면 노란색 단풍도 볼 만하다. 그 후엔 30cm나 되는 잎이 하나씩 지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막 가을이 시작했는데, 벌써 한겨울 듬직한 칠엽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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