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개가 보호소에 신고돼 잡혀 들어오면 유기견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이라 하면 어떤 모습을 떠올릴까? 주인이 잃어버렸거나 고의로 버린 탓에 길거리를 헤매다 털이 엉키고 비쩍 마른 품종 시추나 푸들, 말티즈 그 외 자그마하고 귀여운 모습의 믹스강아지 정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유기견을 살려보겠다고 지자체 관련 보호소를 드나들던 봉사 초짜시절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속한 지자체 유기견의 안락사를 막아가며 봉사하고 좋은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것을 임무라 여긴 봉사자로, 활동가로 7년째인 지금의 나는 유기견의 모습도 정의도, 뿐만 아니라 감정마저도 ‘개’라는 동물에 관한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내가 활동하는 경기도 용인시와 광주시는 도·농복합형 도시이며 이곳 보호소로 신고돼 들어오는 개는 3분의 2가 중·대형 믹스토종견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기견의 모습과 동떨어져 있다. 소위 ‘이런 애들’은 국내에서는 입양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입양시켜도 안전한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개가 ‘반려견’의 위치를 가진 선진문화로의 해외입양을 주로 추진한다. 

어쨌든 이러한 개들을 분명히 누군가는 ‘키웠다’는 것인데, 동물 등록이 돼있던 적은 수년간 단 한차례로 없었다. 법조항에서는 동물 등록의 대상과 범위를 3개월령 이상, 주택 및 준주택 그리고 그외 장소에서 ‘반려’의 목적으로 키우는 개로 정하고 있다. ‘반려’의 목적이라. 

어제(24일)도 살인적인 무더위 속에 길바닥에 쓰러져있던 3개월 정도의 어린 강아지가 들어왔다. 이뿐 아니라 박스 떼기로 보호소로 들어오는 수많은 꼬물이들은 혹한이나 폭서의 계절과도 무관하다. 이런 강아지들은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서 세상 빛을 본지 짧게는 며칠, 길게는 고작 2~3개월 만에 안락사를 위한 주사 바늘이 꽂힌 채 죽어가야만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개를 왜 키우는 것일까? 도심에서 조금만 떨어진 외곽동네라도 가게 되면 익숙하고도 숨이 막혀 묶여 지내는 마당견의 모습들. 진심, 그렇게 살고 있는 개들은 그곳 사람 수보다도 많은 듯하다. 

우리나라 오랜 문화로부터 그래왔듯이 마당에 묶어 집이나 지키게 하다가 복날이면 보신용으로 잡아먹거나 파는 용도로 키우는 것일까? 잡아먹지 않더라도 이사를 가야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하게 돼 더 이상 못 키우게 되면 식용견 신세로 처분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키우는 동안 견주의 무개념과 무책임하에 새끼를 낳게 되면 작고 귀엽다며 이집 저집 잔치음식 권하듯 나눠주고 받는 문화. 이런 개들은 이렇게 끊임없이 번식되고 그 수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이렇게 키운 개들은 줄이 풀리거나 고의적으로 버려져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번식하고, 성견 및 그 새끼들이 보호소로 들어오면 ‘유기견’이 되는 것이고, 먹히면 ‘식용견’이 되는 것이다. 

개는 개일 뿐일진대, 우리나라처럼 개의 분류가 이처럼 다양한 나라가 또 있을까? 마당견, 애완견, 반려견. 종국의 처지와 신세로 결정되는 이름들 유기견, 식용견. 하지만 현재 개식용 및 반려라는 상반된 문화에 관한 끊임없고 다양한 목소리들은 문화적 과도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나저나 당장 내 눈앞 현실에는 섭씨 40도의 폭염이 기록됐던 어제, 길바닥에 쓰러져있었다는 3개월의 여린 생명이 이렇게 있다. 안타까운 모습 앞에 너무도 당연하기에 구태의연할지 모를 ‘생명존중과 책임의식’ 운운은 뒤로 접을 뿐이다. 분노의 감정 또한 반복되는 허탈감과 지치는 현실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이다. 한없는 측은함으로, 이 아가의 행복한 삶을 찾아줄 의지를 가마솥더위 속에 불태워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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