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고 습한 날씨로 사람들은 기운이 빠지고 몸이 축축 쳐진다. 하지만 숲은 더 바쁘고 울창해지는 중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숲은 너무 빽빽해서 브로콜리를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사는 뒷산의 숲이 이렇게 푸르니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곳이 지금보다 좋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이 든다. 

여름 숲은 울창함의 하이라이트이다. 걷기만 해도 생명의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건조한 숲보다 계곡을 끼고 있는 숲은 더욱 그렇다. 숲에서 드물게 박쥐나무를 발견한다. 잎과 꽃 모양이 모두 특이해서 한 번 보면 알 수 있지만 아주 흔하지는 않다. 키가 5m 이하로 작은 나무라 사람들이 접근해서 보기에 좋다. 잎은 끝이 크게 3~5개로 파인다. 그 모양이 박쥐가 날개를 편 모양과 비슷해서 박쥐나무라고 한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는 하얗고 길쭉하다. 꽃이 피면 하얀 꽃잎이 위로 말려 올라가고 가운데 암술과 노란 수술이 남아 있는데, 그 모양이 참 신기하고 예쁘다. 꽃잎이 수정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잘 말아서 고정해 놓은 듯하다. 꽃잎이 화려한 꽃들과 참 대조적이다. ‘꽃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특이한 이 나무에 박쥐나무라는 조금은 어두운 이름을 붙이다니’ 아쉬운 마음을 갖다가도 특이한 이름 덕분에 박쥐나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는 박쥐나무를 참외나무라고 부른다. 잎이 참외 잎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 우리나라 식물 이름은 일본 이름을 가져와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박쥐나무는 그렇지 않으니 이것 또한 다행이다.

가을이 되면 푸른빛이 나는 동그란 열매들이 꽃이 달렸던 자리에 드문드문 자리를 잡는다. 많은 열매에 많은 씨를 만드는 나무들과 비교했을 때 박쥐나무는 열매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박쥐나무는 그렇게 자주 볼 수 없는 식물인가보다. 동물처럼 식물도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약하더라도 살아있는 것, 그래서 씨를 만들 수 있는 것. 박쥐나무는 살아남는 방법으로 독을 선택한 것 같다. 

적은 양의 열매를 맺는데 자기를 지키는 장치 하나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적은 양의 열매였지만 땅속에 남아서 언젠가 기회가 있을 때 ‘나 여기 있었어!’ 하고 싹을 틔울지도 모르겠다. 그런 전략을 쓰는 식물들이 꽤 있다. 풀들이 그런 경향이 많은데, 처음에 많았던 풀들이 숲이 우거지면서 자취를 감췄다가 큰 나무라도 하나 쓰러지게 되면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땅속에 씨들이 많이 남아있던 것인데, 이런 것을 씨드뱅크(seed bank)라고 부른다. 숲이 번갯불에 타고 잿더미가 돼도 쉽게 회복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그 숲은 새로운 나무를 심지 않는 이상 그 전에 있었던 숲의 나무와 풀들로 다시 살아난다. 물론 예전의 큰 숲은 아니지만 어리고 왕성하게 자라는 숲이 된다.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다이내믹한 숲이 된다.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하는 것은 덤이다. 

우리나라의 잠재적인 숲은 도토리나무숲이다. 소나무숲이 아니다. 박쥐나무는 도토리나무숲에서 더 잘 산다. 기본적으로 침엽수는 다른 식물들이 견뎌내야 하는 물질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박쥐나무를 쉽게 볼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숲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쉽게 보고 지나치는 자연은 참으로 복잡하고, 견고하고, 계속 움직인다. 숲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쁘다 말할 수 없다. 있는 것만으로 숲은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보이는 것만 믿는 때가 있었다. 하지만 자연과 함께 하면서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늘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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