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로 깊은 곳에서 구조된 작은 강아지

1미터 깊이는 훌쩍 넘을 무성한 잡풀로 둘러싸인 농수로 같은 곳에 하얀 작은 무엇인가가 보이나요(사진 왼쪽). 강아지입니다. 이 작고 겁 많은 강아지가 깊은 농수로 안으로 뛰어내렸을 리는 만무합니다. 발을 헛디뎌 떨어졌을 리도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 조그마한 생명을 농수로에 던져버린 것일 텐데요. 참 사람들의 개를 유기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사람이 내려가기도 어려웠다면서 구조해오신 원장님도 이런 악질적인 방법으로 개를 유기하느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셨어요. 이렇게 깊은 농수로에 버려진 아이. 얼마나 겁이 났을까요. 아이를 안아보니 제대로 안기지를 못하고 네 다리를 뻗고 몸에 힘을 줍니다. 농수로에 던져진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사람의 품에 단 한 번도 사랑으로 안겨 보지 못한 아이일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버둥거리거나 반항하지도 않는 천성이 순종적인 아이 같습니다. 무척 영리하고 복종적인 아이로 보여집니다. 최상의 반려견이 될 것 같은 아이. 이 작고 겁 많고 영리한 아이가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지요. 폭우가 시작되기 전이라 망정이지 지난 며칠 동안의 날씨였다면 불어난 물에 쓸려 허우적거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2.5kg의 생명입니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 처지는 끔찍한 일입니다. 

다행히 아이는 비교적 건강했고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좋은 주인을 만나는 일만 남겨뒀는데 늘 그렇듯이 ‘믹스견’들의 입양은 품종견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렇게 조그만 2.5kg의 강아지이지만 사정이 다르지는 않네요. 이 아이가 말티즈나 치와와였다면 사정은 많이 달랐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품종견이 아닌 ‘믹스견’들을 향한 편견은 생각보다 깊습니다. 아이가 빠졌던 깊고 높은 농수로의 벽만큼이나 깊고 높은 입양 현실의 벽. 
서양품종견 중심으로 ‘애완견’이라는 문화와 유행이 뿌리 깊은 우리나라에서 ‘반려견’이라는 용어가 생긴 지는 몇 년 안됩니다.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은 달라질 것입니다. 수년 전의 활동을 떠올려 비교해보면 현재는 많이 변화된 것도 사실입니다. 분양장 유리벽을 박박 긁어대며 갇힌 것을 점점 못 견뎌하기 시작할 즈음, 드디어 아이는 좋은 엄마 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보호소 봉사를 자처하시고 봉사 마친 후에 사연이 딱한 이 아이를 품에 안아주셨습니다. 

따뜻한 가정으로 떠나려는 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아이는 분명히 활짝 웃고 있습니다. 낯선 차를 타는 일도 이 조심성 많고 겁 많은 아이에게는 두려운 일이었을 텐데, 아주 당당히 앉아서 엄마를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개의 육감 내지 직감이란 것은 우리 인간들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죠. 나를 결코 해하지 않을 사람, 사랑으로 지켜줄 사람, 아이는 이것을 느끼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헬씨’라는 이름을 선물 받은 아이. 엄마의 바람처럼, 이름처럼,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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