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출신인 김경리 작가는 뒤늦게 미술에 입문한 작가다. 쌍둥이 자녀를 키우며 점점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한 삶에 지쳐가고 있을 때였다. 나만의 시간을 꿈꾸던 시기, 기회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다. 
“집 근처에 장욱진 고택이 있더라고요. 있는 줄도 몰랐어요. 우연히 옆을 지나는데 전시 현수막을 봤어요.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죠.”
다른 많은 작가에게 그랬듯 김경리 작가에게도 우리나라 최초 회화작가로 알려진 장욱진 선생의 고택은 작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가왔다. 끌리는 대로 자꾸 가게 됐다고 했다. 그곳에서 화가들을 만났고 그림을 접하게 됐다. 그림을 전공한 적은 없었지만 소질이 있다는 말은 자주 들었던 터였다. 뒤늦게 잡은 붓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열정으로 타올랐다. 

“장욱진 고택이 나중에 알고 보니 화가들이 서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이 제게 기회로 다가왔어요. 작가 선생님들에게 많이 배웠죠. 고택이 없었다면 전 화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모든 기회들이 빠르게 흡수됐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단다. 짧은 작가 인생에도 다양한 스팩트럼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다. 매년 개인전을 포함해 다수 단체전에 참가할 만큼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유화 등 회화작업으로 시작해 지난해에는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릴 정도로 분야도 넓히고 있는 김 작가다. 
“초기에는 어린 시절 제주도 생활의 영향인지 바다를 많이 그렸던 것 같아요. 풍경화가 주를 이뤘죠. 특히 겨울 바다는 제 영혼이나 다름없었어요. 크고 작은 화음이, 수십 가지 빛깔이 저로 하여금 붓을 들게 했죠.”
작가 말대로 그는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용두암 바다의 빛과 색감을 특유의 짙은 감성으로 표현해 낸다는 평을 많이 받아왔다. 그러던 중 김 작가는 가슴 아픈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김 작가의 붓은 멈춰졌다. 어린 시절 활기차고 힘찬 에너지를 담아 그렸던 바다를 더 이상 그릴 수 없었단다. 

잠 한숨 제대로 못 이루던 어느 날 우연히 방문했던 정읍에서 작가 눈에 들어온 것은 구절초였다. 처음 본 것도 아닌데 그날은 정말 신비롭게 다가왔다고 했다. 
김 작가는 그길로 다시 붓을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구절초의 꽃말은 ‘하늘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이후 김경리 작가는 ‘그리움’ 시리즈로 작가 인생의 2막을 달리게 됐다. 작가의 붓은 더욱 섬세해지고 작품은 흡입력을 갖게 됐다. 2016년 개인전엔 갑자기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그리움’ 시리즈를 주요 작품으로 내걸었다.
지난해 김경리 작가는 또다시 변신을 시도했다. 사진과 회화를 접목한 새로운 분야의 전시를 대중에 선보인 것이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찍었던 사진을 좀 더 전문적으로 익힌 뒤 자신의 주요 분야인 회화와 매치시켜 ‘삶의 흔적’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었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다. 


“작품을 보시는 분들마다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셨어요. 슬픔을 느끼시기도 하고 전통적인 느낌을 받으시기도 했죠. 보는 사람마다 삶의 흔적이 다르니 보는 시각도 달랐던 것 같아요. 제가 원했던 부분이었기에 정말 행복했어요.”
김경리 작가는 올해 새로운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부터 몰두해온 ‘빛의 판타지’는 노을 지는 바다에 은은하면서도 화려하게 빛을 내는 도시 풍경을 모티브로 했다. 조명 아래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빛을 내며 반짝이는 매력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온 김 작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제 꿈이요? 전시도 그럴듯한 상을 받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작품이 제 꿈입니다.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려고요. 제 곁에 작품이 있는 한 저는 늘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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