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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진 약속과 1년 반의 기다림, ‘이루이야기’
  • 기미연(용인시동물보호협회 회장)
  • 승인 2018.05.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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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지금으로부터 1년 하고도 반년 전인 2016년 10월 어느 볕 좋던 휴일의 가을날로 돌아갑니다. 보호소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커플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정신을 잃어 축 늘어진 중형 개 한마리를 안고 와서 “교통사고를 당한 듯 도로변에 누워있었다”고 다급하게 말씀하며 보호소에 놓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시의 유기견 담당자가 처리해야하는 일이고, 보호소 봉사자인 우리는 유기견 인수 절차를 밟을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도 없다는 듯이 땅바닥에 아이를 놓고 갔습니다. 우리도 생사를 오락가락하는 이 아이를 앞에 두고 원칙만을 논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외관상으로 상처가 없던 이 녀석을 우선 병원으로 옮겨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라면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인도주의적 안락사를 고려해야 하며, 치료 가능한 부상이라면 치료해 줘야 한다는 판단을 내려야 할 일이었습니다. 급하게 아이를 싣고 간 병원, 생각보다도 훨씬 다행스럽게 생명이 위중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놀란 듯한 쇼크로 열이 오른 듯하고, 검사 결과 더욱 다행인 것은 내상도 없는 것 같다며 우선 해열제와 항생제 처방을 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는 잘 지켜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조금 후에 아이는 깨어났고, 한가득 담아준 물과 수북이 담아준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중성화수술이 돼있는 것으로 미뤄볼 때 분명, 사람이 돌봤을 이 녀석. 버려진 것인지 길을 잃은 것인지, 떠돈 지 오래된 듯 길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여윈 몸과 때와 먼지에 찌들어있는 잿빛 털의 안쓰러운 녀석. 정신을 온전히 차린 듯 녀석의 얼굴을 그제야 가만히 들여다보니 영리해 보이는 눈동자며 웃는 듯한 입매가 여간 사랑스럽고 귀여운 녀석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입양이 쉽지 않을 이 중형 크기도 넘는 믹스견의 사연을 카페에 알리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주기에 애써야했습니다. 고2의 한 소녀가 이 아이를 보호소로 보러 와도 되겠느냐며 닭가슴살이라도 먹여주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소녀와의 첫 만남. 하지만 미성년인 학생이 유기견을 책임질 수 있으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몸집도 작지 않은 중형견 아이를요. 하지만 소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통화내용은 신뢰가 갔고 희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딸아이가 수의사 지망생인 고2 학생인데 입시를 위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엄마인 본인은 개에 대해 그리 익숙한 편이 아니라서 잘 다룰 수 없기에 딸이 대학에 입학하면 입양할 수 있다. 딸 아이의 도움을 받아야 반려견과 함께 살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데려가기까지 긴 시간 동안 이 아이를 보호소에서 살게 할 수 없으니 비용 지불을 하겠다며 애견 위탁호텔에 좀 머물게 해주고 돌봐주면 가족들이 자주 보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아이의 이름은 ‘이루’입니다. 유기견 봉사를 수년째 하다보면 정말 이런저런 사람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사정은 유기견의 버려진 사정인 동시에 입양되는 사정이기도 합니다.

그 후로부터 1년 반이 지난 2017년 3월 어느 날. ‘이루’의 입양에 대한 약속은 정확히 지켜졌고, 현재 반려견으로서 어엿한 가족의 일원이 돼 행복한 나날을 지내고 있습니다. 처참했던 유기견 ‘이루’와 한 소녀와의 첫 만남과 인연, 그리고 지켜진 약속과 1년 반 동안의 기다림이 만남으로 이뤄진 3월의 봄날은 이루가 처참한 모습으로 보호소에 실려 온 그날만큼이나 볕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날은 아름답다 못해 차라리 슬퍼지기까지 한 찬란히 빛나는 그런 봄날이었습니다.

기미연(용인시동물보호협회 회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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