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들과 숲 근처 놀이터에 놀러갔다. 아이들은 색다르고 큰 놀이터 규모에 만족하며 정말 열심히 뛰어 놀았다. 어떤 기관의 기준으로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인 날이었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주변에 나무가 둘러싸고 있어서 인지 미세먼지의 영향이 크지 않아 보였다. 재채기도 눈 따가움도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좋은 향기가 나 주변을 둘러보니 하얀 꽃이 주렁주렁 달린 쪽동백나무가 보였다. 쪽동백나무는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나무이다. 아이의 얼굴 크기만큼 크고 동그란 잎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나무로 아주 흔하고, 친한 친구를 보는 것처럼 볼 때마다 반갑다.

쪽동백나무 꽃은 작은 꽃들이 모여서 하나의 꽃줄기를 만든다. 작은 꽃 하나하나는 소박하지만 20여개 꽃들이 모여 만드는 꽃줄기, 그리고 그 꽃줄기가 모인 나무 모습은 요즘의 숲에서 단연 돋보인다. 햇가지는 붉은 색의 껍질이 종이처럼 벗겨지지만, 큰 줄기는 짙은 회백으로 매끈하고 갈라짐이 없어 보기 좋다. 줄기가 비에 젖으면 검게 보이는데 그 모습도 특이하다. 많은 식물들이 비가 올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모습과 느낌이 달라진다. 전체적인 모양과 색감이 달라지니 그 차이가 엄청나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에도 꼭 숲에 가봐야 한다. 알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동백나무와는 전혀 다른 식물인데 왜 이름에 동백이란 단어가 들어갔을까? 동백나무처럼 기름을 짤 수 있는 나무라는 뜻일까? 동백꽃같이 통꽃이 달리는데, 그 크기가 작고 큰 동백꽃이 여러 개로 나눠진 것 같아 앞에 ‘쪽’이란 단어를 붙인 것일까? 동백나무의 반쪽만한 열매가 열리기 때문일까?

식물 이름에는 정확한 유래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식물의 겉모양을 보며 그 이유를 추측하는데, 그것 또한 식물을 보는 재미중에 하나이다. 이름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마음을 열고 식물을 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 암술에 털이 있는지 없는지는 유심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고, 그 털이 별모양인지 융털인지는 루페(식물을 관찰할 때 사용하는 휴대용 작은 돋보기)로 봐야만 알 수 있고, 기공세포의 모양은 현미경으로 봐야 확인할 수 있다. 너무 작은 것에 연연하다보면 마음 편히 식물을 볼 수 없다. 이쯤에서 필자는 ‘작은 동백꽃이 모여 나기 때문에 쪽동백나무라 불린다’고 이름의 유래를 추측해 보겠다.

2015년 일본은 군함도를 포함한 근대산업시설을 유네스코에 등재시켰다. 당시 유네스코는 조선인 강제징용자와 외국인 전쟁포로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됐던 사실을 알리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지난 12월, 용산역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일본이 군함도의 강제징용이 있었음을 알리는 청소년역사지킴이들의 캠페인이 있었다. 그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꽃말이 있는 쪽동백나무 꽃과 강제징용노동자들이 많이 끌려간 탄광을 상징하는 탄광모가 그려진 로고를 만들어 사용했다. 5월 2일 유네스코 국제 세미나에서 외교부는 다시 이 일을 상기시켰다. 우리나라에 뿌리박고 사는 식물들은 우리나라 역사 그 자체이다. 그리고 식물은 그 역사를 몸에 새기고 있다. 일제강점기 소나무 송진을 채취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것처럼, 앞으로 ‘쪽동백나무’를 보면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역사가 생각날 것 같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