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

천재 물리학자이자 저술가였던 스티븐 호킹 박사는 생전 루게릭병 때문에 두 손가락 말고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강연엔 늘 청중이 몰려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를 세상과 연결시켜 준 것은 음성 합성기였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비록 기계음이긴 했지만, 음성 합성기를 통해 세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호킹 박사가 한 문장을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을 헤매고 다녔을까? 음성합성 소프트웨어가 없었다면 호킹 박사는 어쩌면 세상과 단절되었을지 모른다

150만 부가 넘는 판매량으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한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에는 ‘메디토커’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음성 합성기 사용자가 나온다. 이야기 주인공은 짧고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분홍색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열두 살 소녀, 멜로디다. 소설은 멜로디가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한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 걷지도 못한다.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다. 너무도 절망스럽다.”- 8쪽
여기까지 읽으면 멜로디가 어린 나이에 우울증에라도 걸린 줄 안다. 그런데 아니다. 불편한 스스로를 진단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들 또한 충분하게 드러낸다. 다만, 세상이 그걸 모를 뿐이다.

“사람들은 나를 볼 때 대개 불편한 내 몸을 먼저 본다. 그런 까닭에 내 멋진 미소와 깊은 보조개를 알아차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다. 내가 봐도 내 보조개는 참 괜찮은데…. 나는 아주 작은 귀걸이를 하고 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는 듯이 내 이름조차 묻지 않는다. 내 이름은 멜로디다.”- 9쪽

멜로디는 몸을 제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리모컨 버튼 정도는 누를 수 있다. 휠체어도 탈 수 있다. 머릿속은 더더욱 자유롭다. 마치 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것처럼 뭔가 보거나 들으면 그때마다 머릿속에 또렷하게 기록하는 멜로디는 자기 세계가 분명하다.
“책 속에 쓰인 단어들은 일단 내 안에 들어오면 나가지를 않았다. 내 안에 영원히 남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나는 쓸데없이 똑똑하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기억이 정확하다.”-18쪽
‘쓸데없이 똑똑하다’고 투덜대던 멜로디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엄마 아빠의 사랑과 아이의 내면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으며 격려해 준 선생님들은 멜로디의 가능성을 꽃 피게 했다.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은 미국, 캐나다, 스페인 등 1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저자 샤론 M.드레이퍼는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에서 편견에 도전한다. ‘정상’이라고 하는 말에 한 방 먹인다. 통합 수업에 처음 참석한 멜로디의 말이다.
“나는 그동안 ‘정상’이라고 불리는 아이들과 함께 어딘가에 속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수업은 나처럼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정상’인 아이들과 함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상? 그런데 그 ‘정상’이 뭔데? 흥!”-99쪽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 속에서 사람들은 멜로디의 머리도 몸의 다른 부분들처럼 엉망일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멜로디의 진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빨간머리 앤보다 더 밝고 귀여운 아이를 말이다.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이 갖는 장점은 장애에 대한 시선이다. 편견에 도전한다고 해서 불굴의 의지로 뭔가를 성취하고, 눈물콧물 쏙 빼는 휴먼드라마로 접근하지 않는다. 멜로디가 갖고 있는 장애를 그냥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다고 장애를 아무렇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소설 속에서 멜로디는 발랄한 아이지만, 수시로 툴툴거린다. 열두 살 아이답게 말이다. 장애가 불편해서 절망스럽다고 토로한다. 그렇다고 그 누구도 장애를 극복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소설은 멜로디가 존재 자체로 예쁜 아이라고 말한다.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존재의 한 모습임을 따뜻하게 그렸다. 물론 휴먼드라마로 접근하지 않았지만 아이를 갖고 있는 부모 입장에서 눈물 쏙 뺀 장면이 없지 않다.

“난 지금까지 엄마, 아빠에게 어떤 말도 직접 해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그래서 버튼을 눌러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한 번도 말할 수 없었던 그 말을 했다. ‘사랑해요. 엄마, 아빠’ 엄마는 결국 눈물을 쏟으며 아빠를 꼭 붙잡았다. 아빠는 코를 훌쩍이면서 그 모든 일을 캠코더로 찍었다.”-147쪽
“사랑해요. 엄마, 아빠.”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직접 한 첫 말에 울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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