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딱따구리가 봄부터 울더니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수컷의 울음소리가 아침부터 구슬프다. 숲으로 산책가기 정말 좋은 요즘이다. 아직도 춘곤증으로 비몽사몽하고 있다면 숲에 가서 에너지를 받아와야겠다. 숲 한 모퉁이에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가 꽃을 피웠다. 보리수나무다. 보리수나무는 꽃이 정말 많이 피지 않고서는 꽃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잎이 유난히 하얀 은빛을 내기 때문이다. 잎 사이로 나팔같이 생긴 작고 하얀 꽃이 주르륵 매달려 있다. 콩과식물들의 뿌리에는 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이 있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콩이 잘 자라는 이유다. 보리수나무도 프랑키아균주가 뿌리혹을 형성한다고 한다. 그래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보리수나무 열매를 많이 따 먹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씨가 너무 커서 그냥 심심풀이로 먹기에 좋은 것 같다. 보리수나무도 보리밥나무, 뜰보리수나무, 민보리수, 보리장나무 등 비슷한 종류가 많다. 이중 보리밥나무와 보리장나무는 보리수와는 달리 상록의 덩굴성 나무이다. 가을에 꽃이 피어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4~5월쯤 열매가 익으니 지금 남쪽 바닷가에 가면 이 열매를 먹을 수 있다. 지난 나무이야기의 ‘송악’도 가을에 꽃이 피고 다음해에 열매가 성숙하는 상록성 식물이었다. 열매라면 당연히 가을에 빨갛게 익어 수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 생각을 오늘로 지워버리자. 늦봄에 먹을 수 있는 열매라니, 식물들의 번식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다.

15년 전 필자가 식물원에서 일할 때 방문객들이 보리수나무를 보고 “석가모니가 그늘에 앉아 수행했다는 보리수나무가 이것인가요?”라고 묻길래 같은 이름이니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얼마 지나 석가모니의 보리수나무는 우리가 아는 보리수나무와 다른 나무라는 것을 알았다. ‘아차, 이런!’ 식물에 대해 알아가고, 알려주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큰 사건이었다. 지금도 보리수나무를 보면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 다시 처음 마음으로 자연을 대하게 된다.

우리 숲에서 만나는 보리수나무는 보리수나무과의 키가 작고 겨울에 잎이 지는 떨기나무이고, 석가모니의 보리수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키가 크고 상록성인 나무이다. 고대 인도말로 ‘보히’는 득도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말로 표기하면서 ‘보리수나무’가 된 것이다. 확실한 어원이 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에서 보리수로 불리는 나무가 있으니 헷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국립수목원 이유미 박사는 ‘인도보리수’로 우리나라 보리수나무와 구별해 부르자고 제안했다.

얼마 전 주한 인도대사가 조계종 설정스님을 방문해 한-인도 불교문화 교류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2014년 인도에서 선물로 받았던 ‘(인도)보리수나무’를 김해로 옮겨 심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상록성인 인도보리수 특성에 맞게 따뜻한 곳에 심는 것이 이치에 맞겠다.

보리수나무 열매는 잼으로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요리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보리수잼을 필자도 이번 가을에 도전해보려 한다. 그전에 보리수나무가 많이 사는 장소를 물색하러 숲을 뒤지고 다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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