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섭취하지 못해서 탈진된 사람들에게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게 하는 것은 오래된 치료 방법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도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꿀물 등을 활용한 시도가 있었다. 동의보감에서도 꿀을 변비나 기침 치료용이나 약재에 섞어 먹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 보인다. 수분 보충은 오히려 소극적이어서 갈증으로 물을 마시려고 할 때에는 늘 부족하게 주는 것이 좋고,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하면 다른 질병이 생긴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의식이 좋지 않을 경우 기도로 들어가는 합병증을 우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탈수가 극심해지는 경우는 심한 설사 환자다. 콜레라는 가장 대표적 설사 질병 중 하나인데 극단적인 탈수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콜레라가 유행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다 회복하지 못했고, 많은 의사들은 원인과 치료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19세기 초반 화학의 발전과 더불어 생체내 화학물질을 측정하는 방법들이 개발되면서 환자 진료에 화학적 분석 방법이 시도되고 있었다. 1831년 영국의 의과대학을 막 졸업한 불과 22세의 젊은 오쇼너시는 화학적 분석에 관심이 많았다.

콜레라가 영국에 상륙하면서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하자 오쇼너시는 콜레라 환자의 혈액과 배설물의 수분 양, 나트륨, 중탄산염 등을 대략적으로 분석했다. 오쇼너시는 이 중 콜레라 환자는 탈수돼 수분이 부족하며 소금 성분이 빠져 나간 것을 발견했다. 물론 현대적 관점에서 오쇼너시의 분석은 아주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쇼너시는 환자 상태를 연구한 뒤 부족한 것을 집어넣으면 콜레라를 치료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물에 소금을 녹여서 혈관 속에 주입하는 방법이었다. 오쇼너시의 생각은 놀라운 파문을 만들어냈다.

혈관에 수액을 주입하는 방법은 이미 개발돼 있었다. 1658년 크리스토퍼 렌이 돼지 방광과 거위 깃털을 이용해 개의 정맥에 혈액 주입을 시도했고, 1800년대 초반에는 원시적 형태의 금속제 주사기들이 개발됐다. 주사기들은 몸에 약품을 투여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주로 피를 뽑아내는 사혈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나쁜 피가 질병을 유발시킨다는 생각이 지배하던 시절로 사악한 기운을 빼낼 목적으로 주사기를 이용한 것이다. 이제 주사기를 원래 목적대로 사용해 혈관 속에 수액을 주입하면 되는 것이었다.

오셔너시의 주장에 큰 감명을 받은 영국의 동료 의사 라타는 1832년 5월 소금과 탄산수를 물에 녹인 소금물을 만들었다. 소금물을 주입한 첫 번째 환자는 잠시 기력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얼마 뒤 사망했다. 라타는 실망하지 않고 소금물의 적절한 농도와 양을 연구해 마침내 콜레라 환자를 회복시키는데 성공했다. 3~5리터의 소금물을 주입한 환자들은 파란 입술에 홍조가 다시 돌아오고 경련이 멈추면서 정말 기적처럼 회복되기 시작했다. 놀라운 치료 방법은 의료계에 큰 영향을 줬고, 많은 의사들은 콜레라 환자 혈관에 소금물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탈수로 사경을 헤매던 환자들이 회복됐다. 의사들은 새로운 치료 방법을 경쟁적으로 개선했고 소금물 농도를 조정하거나 다른 액체를 혈관에 주입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심지어 우유를 혈관 속에 주사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런 주사는 많은 문제를 발생시켜 환자들이 고열과 경련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사망하는 환자들도 발생했다.

소금물 주사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사망이 이어지자 오쇼너시와 라타가 주장한 소금물 주사방법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시작됐다. 콜레라의 정확한 진단 방법이 없었기에 라타 등이 치료했다는 환자 중 상당수가 진짜 콜레라 환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경미한 탈수 환자가 소금물 주사로 회복된 것이다. 소금물 주사는 더 이상 환상적인 치료 방법이 아니었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일반적인 콜레라 치료 방법인 수은, 마약제, 경구 수액요법과 비교 연구가 진행됐다. 놀랍게도 소금물 혈관 주사법은 환자의 90%가 사망한 반면 전통적인 치료법은 50%가 회복됐다. 당연히 소금물 혈관 주사법은 의료계에서 퇴출됐다. 소금물 주사법을 시도했던 의사 라타는 마지막까지 혈관에 수액을 보충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기본적인 개념을 제안했던 오쇼너시는 더 이상 의학연구를 하지 않고 인도로 건너가서 화학과 전기통신 분야에서 활약했다. 

오쇼너시와 라타가 활용한 소금물은 0.9% 농도로 당시에는 혈액 농도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상 소금물(Normal Saline)’로 불리어졌다. 최근 분석에 의하면 정상 혈액의 농도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아직까지 영어권에서는 같은 단어로 사용되며 한국어로는 ‘생리식염수’로 번역됐다. 시대를 앞섰던 오쇼너시와 라타의 수액 주사법은 당대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19세기 후반 세균이 발견되고 1883년 링거가 물을 끓여서 만든 증류수를 이용한 수액제를 연구하면서 소금뿐 아니라 칼슘, 칼륨 등의 물질을 추가해 새로운 수액을 만들어 환자 치료에 큰 효과를 보게 됐다. 소독 등 감염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링거액은 큰 부작용 없이 전 세계적으로 활용됐고 생리식염수 역시 다시 활용되기 시작했다. 생리식염수와 링거액은 구한말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종의 주치의로 활약했던 독일 의사 분쉬가 1900년 임신중독증에 걸린 만삭 임산부에게 링거액을 투여하는 사진이 남아있다. 링거액은 콜레라 등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던 한국사람들을 회복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고 깊은 인상을 남겨 현재까지도 많은 한국인들이 수액을 ‘링거액’으로 부르고 있다. 1959년 중외제약이 처음으로 5% 포도당 수액을 생산하는데 성공했으며 다양한 수액제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수액제는 발전을 거듭해 각종 성분이 함유된 아미노산 등이 다양하게 개발됐고 식사를 못하거나 쇠약해진 환자의 영양을 보충해 회복에 도움을 줬다. 특히 중환자의 경우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영양 수액제 혼합 중 발생한 감염사고로 신생아 사망사고가 있었다. 종합병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인의원 역시 감염 관리에 노력하고 있으나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수액 주사는 투여 물질이 혈액에 직접 노출되기에 전 과정에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며 응급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의료기관에서만 이뤄져야 한다. 더욱 안전하고 좋은 수액 투여를 위해서 의료기관도 노력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정부의 지원은 재정 투입이 필수적인데 현재 주사료는 1,2천원에 불과한 실정이다. 좀 더 좋고 안전한 의료환경을 위해서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국민의 높은 이해와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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