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는 건강의 근원이다’ - 독일 격언에서

몰트

이번 호에는 지금까지 살펴봤던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알아보자. 맥주와 같은 곡주는 포도주와 같은 과실주와 달리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알코올 발효의 기본 원리인 효모가 당을 만나 분해해 알코올을 만드는 것은 같다. 하지만 과일과 달리 보리나 쌀, 밀 등에서 바로 당 성분을 뽑을 수 없기 때문에 곡물의 녹말 성분을 잘게 쪼개 발효를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양조장은 공장과 같은 시설을 가지고 있지만 맥주의 양조는 이미 밭에서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을 비롯한 서구의 대부분 양조용 보리 작목 농장주들은 맥주 양조에 최적화된 품종들을 수백 년에 걸쳐 개발해 왔다. 어쩌다 남은 잉여농산물로 술을 양조한 것이 아니라 술을 위한 농작물을 길러온 셈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나라만의 맥주 양조 길은 아직 먼듯하다.

이렇게 수확한 보리는 몰스터에게 넘겨진다. 몰스터는 수확한 보리를 양조에 적합하게 가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몰스터는 몰트하우스에서 보리 싹을 틔운다. 싹을 틔우는 이유는 보리 배아(씨눈)가 발아하면서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데, 그 영양분이 효모의 먹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보리 낱알은 껍질과 배로 이뤄져 있다. 배는 배아와 배젖으로 구성된다. 배아가 발아되면 배젖이 영양 성분을 배아에게 주기 위해 녹말 성분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래서 몰스터는 보리를 물에 담가 발아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너무 자라면 영양 성분인 녹말이 줄어들기 때문에 성장을 멈추게 하기 위해 건조하거나 볶아서 강제로 발아를 멈추게 한다.

이 상태를 맥주의 주 재료인 ‘몰트’라고 한다. 몰트를 얻기 위해 건조가 아니라 볶는 이유는 맥주 색을 내서 브라운 계열 맥주나 스타우트 계열의 흑맥주를 만들기 위함이다. 물론 볶은 향과 맛이 가미돼 독특한 풍미와 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건조 방법은 맥주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렇게 볶은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의 맥주가 나오게 되는데, 색을 표시하는 기준을 SRM(맥주의 색깔지수, Standard Reference Method)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라거는 SRM이 2로 비교적 옅은 맥주에 속한다. 에일의 경우는 7~15이고, 검은 색의 스타우트는 SRM이 40 정도이다. 요즘은 크레프트 맥주에 이러한 SRM 표시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판매되는 맥주가 병에 담겨있어서 맥주의 색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소비자가 원하는 색인지 알려주는 서비스인 셈이다.

허준영

이렇게 만들어진 몰트를 몰트하우스에서 구입한 부르어리(양조장)들은 이 몰트를 한 가지만 쓰지 않고 여러 몰트를 배합해 사용한다. 참고로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가 되듯이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된다. 고급 위스키를 만들기 위한 맥주는 여러 몰트를 섞지 않고 한 종류의 몰트(싱글 몰트)만 사용하기도 한다. 양조장들은 보통 옅은 색의 몰트를 기본으로 사용하지만 다양한 산지의 여러 종류 몰트나 밀을 섞어서 자기들만의 독특한 풍미와 색깔의 맥주 레시피를 만들어낸다. 다음 회에는 몰트를 이용해 발효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여기부터 수제 맥주를 만들어 먹는 애호가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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