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평가서
백제시대 기와·제기 등 출토 이례적

조선시대 횃불이나 연기로 적의 침입을 알리는 통신수단이었던 ‘석성산 봉수터’가 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용인시는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산77-33 일대 ‘석성산 봉수터’에 대한 1차 발굴조사(400㎡)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25~26일 열린 학술자문회의에서 문화재로 지정될 가치가 충분하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고 밝혔다.
문헌으로 확인된 조선시대 중요 봉수대의 의미를 넘어서 제례지로 이용됐을 가능성과 삼국시대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관방유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유물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1차 발굴에서는 밤에 봉화를 올리거나 낮에 연기를 피워 신호를 보내는 아궁이와 굴뚝시설인 연조 5기, 봉수대 방어를 하는 방호벽, 건물지 등의 규모와 형태 등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문화재청 전문위원인 김길식 용인대 교수는 “백제 기와로 추정되는 유물부터 조선시대 유물까지 출토된 것으로 봐서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관방유적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현재까지 조사 성과로도 경기도 지정문화재로 지정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봉수 전문가인 한국토지주택공사 김주홍 박사는 “가장 큰 성과는 연조 5기를 모두 확인했다는 것”이라며 “특히 1번 연조는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암반을 굴착하고 할석(깬 돌) 축조한 형식으로 그동안 내지봉수에서 확인되지 않은 형태로서 최초로 확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4번 연조 내부에서 백자 제기가 출토됐는데 봉수대에서 제기가 출토된 사례는 매우 특이해 석성산 봉수대가 제례적 기능도 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한양문화재연구원은 1차 발굴을 통해 전체 길이 31m, 최대 너비 15m의 봉수대를 확인했다. 이 가운데 5기의 연조는 봉수대 장축방향과 같은 남북방향으로 조성됐으며, 각각의 연조는 길이 2~3.2m, 너비 1.6~2.6m, 깊이 0.55~1.2m로 나타났다. 각 연조는 인접한 세 번째, 네 번째를 제외하면 약 4~5m 간격을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호벽은 전체 둘레가 85.5m, 잔존 높이는 약 1.5~4m로 확인됐다. 방호벽 전체 형태는 드러났으나 상당 부분 훼손됐다. 일부 잔존 상태가 양호한 부분이 있어 축조방식을 엿볼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지에선 온돌이나 화덕 같은 난방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연료를 보관하던 창고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번 발굴에선 봉수대 내부로 진입하는 출입시설로 추정되는 계단시설도 드러났는데, 잔존하는 계단은 5단으로 나타났다.
석성산 봉수터는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나 화성성역의궤 등에 기록이 남아있어 조선시대 봉수체제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에 나온 성과에 비춰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된 성남 천림산 봉수대나 고양 독산봉수대 이상으로 차별화된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석성산 봉수터는 조선시대에 불을 피워 연기나 횃불을 올리던 아궁이와 굴뚝시설인 연조 5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다 무너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시는 이번 자문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추가 발굴조사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고, 본격적인 복원에 앞서 이 일대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관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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