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소에 들어온 지 한 달이 넘어가던 아이였습니다. 철장 안에서 점점 쇠해져가는 모습이 안타깝고 맘이 아픈 아이기도 했는데요. 참 착하고 예쁘게 생겼습니다. 굳이 종을 따지자면 ‘푸들믹스’로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이 아이의 외모가 소위 오리지널에 충실한 흰 푸들이었다면 입양은 훨씬 빨랐을 것입니다. 유기견 입양 봉사를 해보니, 우리나라처럼 품종을 따지는 나라는 드문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반려견’이라는 용어가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애견문화이며, 아직은 ‘반려견’보다 ‘애완견’이라는 용어가 익숙한 우리문화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것입니다. 애완견의 ‘완’은 완구에서의 ‘완’과 같이 ‘가지고 놀다’라는 의미이죠. 생명에 붙이기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용어이니 더 이상 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던 중 한건의 입양 문의가 들어왔고, 상담자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를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와서 건강검진을 받게 하고 싶다 하며 한달음에 달려와 아이를 입양해갔습니다. 그날 밤 문자로 아이 사진과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어느새 예쁘게 미용까지 시켜놓은 사진 속의 데니는 영 다른 아이가 돼 있었습니다. “어머님 댁에 데리고 왔는데, 너무 예쁘고 착하고 영리하다”며 말씀을 연발했지요. 검진 받은 동네병원에서 아이 나이가 9세 정도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이는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지자체의 유기견 공고상에는 2015년생으로 추정됐던 이 아이의 나이는, 실제로 이보다 조금 많아 보인 것이 사실이지만 9세까지 돼 보이지 않았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입양됐던 아이는 다시 보호소 철장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아주 비극적이고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기도 합니다. 보호소 아이들의 나이는 누가 봐도 아주 어리거나 고령인 노견을 제외하고는 나이 추정이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유기견 입양 상담이나 입양 진행에 있어서 ‘나이’는 꽤 민감한 조건이며 중요한 사안입니다.
대부분의 유기견 입양 상담자들의 우선 조건은 ‘나이 어린 애’입니다. 그래야 건강하고 오래 함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어찌 보면 당연한 조건일 겁니다. 반려견도 늙고 병들어 한번은 죽게 되는 것이 이치이기는 하나, 견주 입장에서 그 시기를 늦게 겪게 되면 좋은 것이니까요.

하지만 유기견 입양에 있어 이분처럼 ‘일반적인 조건’을 기준에 두지 않는 감동스럽고 존경스러운 의미 이상의 신념을 가진 분들이 꽤 계십니다. 9세의 나이라도 상관없다는 입양자께 “왜 나이를 상관 안하시느냐”고 더 묻고 싶었습니다만 주고받은 문자에 충분한 대답이 있었습니다.

 

“조금 늦게 우리와 인연이 된 것 같아요” 이름은 ‘데스트니(운명)’라고 합니다. 그래서 ‘데니’랍니다. “이 아이를 만난 것은 운명입니다. 이 운명은 ‘우연’이 아닌 ‘선택’이었습니다”
한번 선택한 생명에 대해 나이보다 인연과 운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입양자 가족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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