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남편의 갑작스런 국회의원 출마로 준비 없이 후보자의 부인 역할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남편에게 국회의원 후보 차출의 말이 나온 지 두 달여 만에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이뤄진 선거였다. 당시 필자 나이는 30대 중반이었다. 낙선 후 예상하듯이 마음의 후유증이 컸다. 가장 큰 상처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남편을 둔 모든 여성들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길거리에서 콩나물 파는 아줌마를 보거나, 이웃집 아줌마들을 마주쳐도 그녀들이 부러울 만큼 한동안 불행했다.

세월이 흘러 어찌어찌 하다 보니 4년 전에는 내 자신이 후보자가 돼 또 다시 큰 선거를 치렀다. 선거를 거치면서 역시 정치는(선거라는 도구는) 나의 몫이 아님을 깨달았다. 낙선한 나를 위로하는 많은 사람들의 안부가 고맙기는 했지만, 솔직히 조금은 거추장스러웠다. 이번에는 마음이 불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선거판에 뛰어들어 당선되고, 그래서 권력을 움켜잡는 것이 출마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세상살이 겪다보니 그만큼 성숙해진 탓도 있었을까. 의외로 나는 진심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

정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이지 선거에 당선돼 소위 권력을 움켜잡는 것만이 최종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낙선하고도 슬프지 않았다. 당시 용인시장 출마를 앞두고 나는 스스로 자문했다. “왜, 나는 정치에 뛰어드는가” 답은 물론 중요한 결정권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지고한 최종 목적은 아니었다. 지금도 자신 있게 이 말을 누구에게나 할 수 있고, 이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시민사회 활동을 하다보면 주요한 결정권자들의 잘잘못이 눈에 크게 보이고, 그에 따라 내가 결정권자라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것이 1000명 용인시민들의 용인시장 출마 권유에 응하게 된 이유였다.

지금 나는 편안하다.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세상 만들기에 다른 방법으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고,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위에서 ‘뭔가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조건이 긍정적인데 왜 나서지 않지?’라고 하지만 뭔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주말에 가족들과 쉴 수 있어 좋고, 보고 싶은 영화 한편 편안하게 볼 수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딸과 동네 앞 흐드러진 꽃구경도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지금의 삶이 여유로워서 좋다.

출마를 앞둔 정치 지망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첫째, 정치 자체가 최종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는 도구일 뿐이다. 내가 사는 세상, 후손이 살아갈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정치라는 도구를 활용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 인생에서 정치를 선택하고 선거에 출마해 당선 자체가 최종 목적이 될 때, 결코 행복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정치와 선거에서는 성공만 있는 게 아니라 확률로만 보면 오히려 실패가 더 많기 때문이다.

둘째, 욕심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어렵게 시의원이 되면 더 큰 틀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의원이 되고 싶어지고, 도의원이 되면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 되면 다 끝난 것 같지만 재선·삼선을 원한다. 되지 못하면 불행하고 되면 세상을 얻을 것 같지만, 그 때부터 다시 늘 불안해진다. 국회의원 재선·삼선하면 정부기구에서 장관을 해보고 싶고, 장관하다보면 더 높은 자리를 갖지 못해 마음이 불행한 정치인들을 여럿 볼 수 있다. 내 주위의 몇몇은 대통령도 꿈꾼다. 대통령이 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행복할까? 정치는 끝이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욕심이 욕심을 낳는 것이 정치판이다.

정치활동에 새롭게 뛰어든 아끼는 많은 후배들에게 감히 조언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후보 가족도 돼보고 직접 후보도 돼봐서’ 아는데, 정치활동으로 ‘당선해 권력을 잡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면 불행해질 가능성은 높아진다. 정치란 서로서로 엄청난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당한데 저 사람은 잘못하는 것 같지만 그 입장에서 보면 거꾸로 나는 대단히 나쁜 사람이 돼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욕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지만, 정치인을 욕하는 것은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당선해 권력을 잡는 것’이 최종 목적이 되면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집단에 소속되려고 갖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할 일은 정말 많다. 정치와 선거가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고 보람인지 해 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알고 있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큰 용기이다. 그러나 ‘왜 정치판에 뛰어 드는가’를 이제라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기 바란다. 개인의 욕심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치인이 되기를 감히 조언한다. 휘몰아치는 선거판이 끝난 후에도 스스로 상처받지 않고 그나마 작은 행복이라도 놓치지 않고 누구에게나 떳떳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기에 감히 몇 마디 적었다. 이 글을 읽는 시기가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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