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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아날로그 추억] 아이들로 북적였던 ‘크로바완구’ 기억하시나요?

오래된 학교 앞 문구점. 70~80년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처인구 주민이라면 용인초등학교 앞 문방구가 줄지어 있던 당시를 기억할 것이다.

없는 게 없던 문방구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지금처럼 보고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문방구는 요즘의 ‘키즈카페’ 같은 공간이었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여있는 장난감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가는 줄 몰랐으리라.
과거 중앙시장 입구였던 김량장동 133번지 일대는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문방구가 서너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곳 ‘크로바완구’만 남아있다. 중년의 문구점 아저씨는 백발노인이 됐고, 두 자리로 시작하는 간판 전화번호와 문구점 창문에 쌓인 빛바랜 장난감 상자들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예전에 용인국민학교에 학생만 4000명이 넘던 시절에는 등하교 시간이면 아이들이 줄을 서야할 정도로 붐볐어요. 지금은 학교에서 준비물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시스템인데 예전엔 준비물 사려면 무조건 문구점을 들르는 거죠.”
1980년대에 용인초등학교를 다녔던 김철(44) 씨는 문구점이 줄지어 있던 그 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지금보다 두 배는 컸던 ‘크로바완구’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매일 들르는 ‘아이들의 아지트’였다.


“제 기억 속 ‘크로바완구’는 항상 아이들이 가득했어요. 당시 남자 아이들 장난감이라고는 로봇이나 탱크 조립 정도밖에 더 있어요? 조립을 어려워하면 주인아저씨가 해주셨던 기억나요. 무뚝뚝하신 분이었는데 아무 말 없이 도와주신 거 보면 아이들을 예뻐하셨던 것 같아요.”

참새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고 들렀던 아이들 아지트

경안천을 잇는 다리도 가게 앞 하나뿐일 때라 인근 회사원부터 중앙시장을 들르는 시민들, 학교에 가는 학생들 대부분이 이 곳을 지났다. 북적거렸던 골목은 인근 도시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발길이 줄었다.

1971년 서울과 용인,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됐다. 이어 3군사령부가 창설되고 지금의 에버랜드인 자연농원이 만들어지며 조용했던 읍내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구도심에서 신도심으로 이동했고 북적였던 골목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했다. 함께 인근에서 장사를 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도 할 수 있는 일은 이 자리를 지키는 일밖에 없었다.

“세상이 시끄러워도 나는 늘 여기 있었지. 대통령이 몇 번 바뀌었는지 몰라.”
이 앞을 지나다니며 매일같이 창가에 들러붙어 군침을 흘리곤 했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돼 같은 또래 아이들의 부모가 되었으리라. 세월이 흐른 만큼 상자의 화려한 색들은 빛바랜 채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70년대부터 여기서 장사했으니까 50년 가까이 됐지. 추억? 먹고 사느라 바빴지 그런 게 어디 있어.”
백발의 노인이 돼 버린 ‘문방구 주인아저씨’ 이상학(81) 씨는 이 곳을 추억으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아직도 많다는 얘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는 듯 웃어넘겼다.
두 자녀를 키우며 매일 문을 열었던 일터다. 미우나 고우나 일생의 반 이상을 함께 했던 이곳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싫지는 않은가 보다. 지금은 문구점 크기도 반으로 줄고 하루에 한두 명 손님이 찾을까 말까 한 구멍가게가 됐지만 이 씨와 부인 양기자(78) 씨는 매일 문을 연다. 

“한창 잘 될 땐 아이들이 몰릴 시간이면 정신 없을 정도로 바빴죠. 누가 뭘 가져가도 몰라요. 어느 날은 아비가 자기 아들을 데려와서는 장난감을 훔쳐갔으니 혼내달라는 거예요. 뭐라 하겠어요. 한창 갖고 싶을 나인데. ‘너 이거 훔치면 감옥 가서 고생한다’하고 겁주고 말죠.” 
세월이 세월인 만큼 어린 시절 추억을 찾아 아이와 함께 문구점을 방문하는 손님도 있다. 주인이야 기억이 나지 않으나 손님은 종이 딱지를 수백 개 사 모으고 십 원짜리 들고 와 주전부리를 사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아저씨 그대로시네요’ 해요. 그럼 나는 ‘뭘 그대로야 머리가 하얗게 됐다’ 하지. 조그만 했던 꼬마가 이만큼 커서 또 꼬마 하나 데리고 오면 신기하지. 내가 오래하긴 했구나 싶고.”

한때 크로바완구는 구하기 힘든 단종품을 구하러 오는 이른바 ‘수집가’들로 북적이기도 했다.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 한번 소문이 나면 며칠 안 돼 그 물건을 싹 다 사간단다. 덕분에 창고에 쌓아뒀던 재고들은 이제 남은 게 거의 없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물건이 팔리던 팔리지 않던 유행하는 캐릭터 완구는 꾸준히 구비해 놨었다. 하지만 대형마트가 곳곳에 들어선 요즘 장난감을 사러 이곳에 들르는 손님은 거의 없다. 대규모로 물건을 들이는 마트보다 물건 값이 더 비싸기 일쑤다. 카드 단말기는 눈도 어두워지고 다룰 줄을 몰라 현금만 받는단다.  

“장사 안 되는 거 그냥 붙들고 있는 거예요. 자릿세는 나가지 않으니 소일거리로 나오는 거지. 놀 수는 없잖아요. 세금도 내고 먹고 살아야하고….”
이 씨는 이제 1~2년 안에 크로바완구를 접으려 한다고 말했다. 예전엔 한 해 한 해 지나며 나이 먹는 걸 느꼈다면 이젠 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힘든데 그만하라고 해요. 이제 여기 앉아 있기도 힘들죠. 없어지면 아쉬워들 할거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거 찾아다니느라 바쁘지. 기억이나 해주면 고맙지.”

황연실 기자  silsil47@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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