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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아날로그 추억] 처인구 백암면 ‘희노애락’ 나누는 꽃샘미용실

“요즘 정말 행복해요. 손님들이 절 잊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찾아주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백암면 꽃샘미용실은 1980년대 문을 열어 3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백암면 아주머니들의 스타일을 책임지고 있는 이는 장옥자(60) 원장이다. 평소 성격 좋고 머리 잘 하기로 소문난 미용사라 백암에선 꽃샘미용실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백암에 10곳이 넘게 미용실이 있는데 머리는 여기가 제일 잘해요. 나는 머리를 보면 어디에서 했는지 딱 안다니까.”

이제 나이 60세가 넘은 장 원장을 처녀시절부터 봐 왔다는 한 손님이 자랑하듯 말하자 장 원장은 “내 손님이니 내가 제일 잘 한다고 하시는 것”이라며 겸손하게 응수했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장 원장에 대한 신뢰가 남다르다.
사실 요즘 미용실이라면 으레 머리를 하기 전 손님과 미용사는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어떤 스타일로 하고 싶은지, 무슨 종류 파마를 할지, 앞머리 뒷머리 옆머리 길이, 머리카락 색 등등 머리하기 전 확인할 사항이 한 둘이 아니다.

반면 꽃샘미용실은 별것 없다. 손님도 원장도 따로 어떤 머리를 할 건지 오고가는 말이 없다. ‘파마’ ‘염색’ ‘커트’ 중 하나만 고르면 나머지는 장 원장 재량이다.
“머릿결이 상하지 않는 것, 얼굴형에 맞게 커트하는 것이 중요하죠. 대부분 손님들이 제게 그냥 맡기세요.”

이제는 눈 감고도 파마를 할 수 있는 실력의 장 원장도 당연히 초보 시절이 있었다. 뜨거운 도구를 들고 머리를 만지다 손님 두피에 화상을 입힌 적도 있다. 당시 미용실 원장이 직원이었던 장 원장을 눈물 쏙 빼도록 혼을 내는데 속도 상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벌벌 떨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단다. 그런데도 막상 다친 손님은 괜찮다고 장 원장의 손을 쓰다듬고 위로해줬다.
“예나 지금이나 백암면 분들이 참 다들 좋으세요. 정도 많으시고요. 그때 그 손님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너무 아프셨을 텐데 절 위로하느라 아프다는 내색도 안하고 가셨어요.”

장옥자 원장은 그런 손님들 덕분에 40여년 동안 미용사로 백암면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을 만나고 아들 둘을 키우며 정신없는 젊은 날을 보냈지만 미용사로 일한 것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이제 장 원장의 손님들 대부분은 60세 이상 여성 노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장 원장이 미용일을 시작했던 40년 전에는 젊은 층이 주 고객이었다면 세월이 흐르며 손님 층도 바뀌었다. 미용사가 나이를 먹는 동안 손님들도 함께 세월을 맞았다. 장 원장은 오히려 그래서 좋은 면이 더 많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잘 몰랐던 손님들 마음이 지금은 더 잘 와 닿아요. 관계가 더 깊어지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거죠. 동질감이랄까. 같이 늙어간다는 느낌 같은 거요.”

7평 남짓 공간, 너도 나도 마음을 내놓는 곳

미용사는 때로 상담사가 된다. 하루 종일 말 붙일 곳 없이 가슴앓이를 하던 손님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사이 답답한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진다. 사람 마음이 참 신기하게도 그저 듣고 맞장구 쳐 주는 일 뿐이고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두어 시간 미용실에서 노닥거리다 보면 막힌 한쪽이 뻥 뚫리는 느낌이란다.

“원장은 우리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편이에요. 말 안 해도 서로 알지. 오늘은 기분이 별로구나. 남편이 속 썩였구나. 하하하. 여기서 얘기를 나누고 나가면 그 말이 밖으로 돌지 않아서 좋아요. 우리끼리 그냥 얘기 나누고 잊는 거야.”
30년 넘게 장 원장에게 머리를 맡긴다는 한 손님은 그의 칭찬을 내내 입이 마르도록 했다. 머리만 잘 한다고 수십 년 단골이 되기 힘들었을 터인데, 미용실에 있는 동안만큼은 머리를 맡기듯 마음도 오롯이 내어놓는다.

오후 2시. 7평 남짓한 공간에 손님 대여섯 명이 들어서니 앉을 곳 없이 꽉 찼다.
“점심은 드셨어요? 여기 오실 줄 알았으면 같이 먹을 걸.” 백암면 내 다른 마을 사람들이라도  서로를 알음알음으로 안다. 그래서 그런지 약속을 하고 만난 것도 아닌데 약속을 한 듯 나눌 이야기는 넘쳤다. 정치, 사회, 경제 등 무거운 얘기 따위는 없다. “팥을 삶았는데 너무 삶아 밥에 넣어 먹었다”는 식이다. ‘팥’이라는 주제 하나를 가지고도 손님 대여섯이 돌아가며 이야기를 보탰다. 

모르는 사람이면 어떤가. 손님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구보다 친근한 사이가 돼 버린다. 어쩔 수 없다. 머리를 다 할 때까지 자의든 타의든 한 공간에 최소 3시간에서 5시간은 넘게 같이 있어야 한다. 미용사가 한명 뿐이라 2시간 넘게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 없다.

드디어 손님 한명이 머리를 다하고 갈 채비를 했다. 아침부터 와서 꼬박 4시간 넘게 머리를 하느라 지칠 만도 한데 그런 기색 없이 들뜬 모습이다. 머리가 아주 잘 됐다는 장 원장 말에 입가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푸른빛 지폐 두어 장을 원장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얼마인지 누구도 확인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고 수고했어” 한마디면 끝이다. 그러면서 문밖을 나가며 건네는 한마디가 더 일품이다.
“한 달 후에 봐요.”

그 말에 앉아 있던 다른 손님이 “한 달 후로 예약해 놓으마”하며 농담을 던지자 다 같이 기분 좋게 큰 소리로 웃는다. 
“예약이 따로 있나요. 아침에 문을 열려고 보면 벌써 오셔서 문 앞에 앉아 기다리시는 분도 계세요. 단골손님들은 1년에 적어도 10번은 만나요. 반평생을 함께 한 분들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요.”

아침 8시 문을 열어 저녁 6시까지 점심 먹는 20분 빼고는 쉴 틈 없이 손님 머리를 만져야 하는 일정이다. 바쁘고 지쳐 고단한 표정을 한번쯤 지을만 한데 내내 밝기만 하다. 행복하다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미소다.

황연실 기자  silsil47@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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