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국가 지향 명시 의미 커
교육자치·자치경찰제 도입은 빠져
자치재정·입법권 보다 더 강화해야

지방자치시대 개막 후 23년,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같은 물음에 문재인 정부가 답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자치와 분권, 지역 간 균형발전 등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 등을 담은 개헌안을 발의했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지방에 있음을 밝히고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이에 앞선 21일 조국 민정수석은 지방자치에 관한 개헌안 내용을 발표하면서 지방분권 강화는 ‘서울과 수도권 대 지방’, ‘효율 대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수석은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의 37%, 읍·면·동의 40%가 사라질 운명에 있다”며 “‘지방소멸’은 서울과 수도권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국가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 전략으로 수도권에 인구의 50%가 몰리며 비대해지고, 지방은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낙후되고 피폐해졌다는 것이다.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발전의 가치이자 전략”이라는 문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다. 이번 개헌안은 지방 없이는 서울도, 수도권도 없으며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지가 담겼다. △지방정부 권한 확대 △주민참여 확대 △지방분권 관련 조항의 신속한 시행 등 3가지 핵심 내용이 그것이다.

먼저 ‘자치와 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문 개정에 더해 제1조 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대한민국 국가운영의 기본방향이 ‘지방분권’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조 수석이 지방분권 개헌안을 설명하며 밝혔듯이 이 조항은 향후 입법과 정부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분권 원리가 국정과 입법 해석의 근본원리로서 기능함을 의미한다.

중앙과 지방이 종속·수직 관계가 아닌 독자적·수평적 관계라는 점이 드러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라는 명칭이 자치의회와 행정부로 구성되는 ‘지방정부’로, 지방자치단체 집행기관이 ‘지방행정부’로 변경됐다. 지방자치단체는 일본의 ‘지방공공단체’라는 용어에서 비롯됐다.
지방정부 스스로 적합한 조직을 구성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 구성 방법, 지방행정부 유형과 장의 선임 방법 등 지방정부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현행과 같이 법률로 정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조례로 정하도록 자주권이 부여됐다. 법령에 의해 조례 범위가 과도하게 축소·제한되는 구조를 지방정부가 지역 실정에 맞는 행정서비스를 주민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자치조직권을 부여한 것이다.

자치사무 수행경비 지방정부 스스로 부담
자치행정권과 자치입법권도 강화됐다. 우리나라는 지역 특색에 맞게 정책을 시행하려 해도 국가법령 범위 안에서만 입법이 가능해 지역별로 특색 있는 발전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치권이 보장될 수 있게 국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간 사무 배분은 지역주민의 삶에 가장 가까운 지방정부가 우선 처리하는 ‘보충성의 원칙’이 명시됐다. 국가는 지방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대해서 보충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또 ‘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하던 것을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이 폭넓게 보장되도록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로 수정했다. 여전히 지방정부의 권한을 중앙정부와 국회가 정한 법률의 범위 내에서 허용하고 있지만, 법률에 정하지 않고 있는 사항도 조례로 만들 수 있게 강화됐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다만 주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법률 위임이 필요한 경우에만 조례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개헌안에는 재정 확보 없이는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자주재정권을 보장하는 내용도 담겼다.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갈등을 빚은 것 같이 정책 시행과 재원조달의 불일치로 서로에게 재정 부담을 떠넘기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지방정부는 자치사무 수행에 필요한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고, 국가나 다른(광역) 지방정부가 위임한 사무를 집행할 경우 사무를 위임한 기관이 비용을 부담하도록 원칙을 명시했다. 이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재정을 의존, 종속성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자치입법권처럼 제한적이긴 하지만 지방의 오랜 숙원이었던 ‘지방세 조례주의’도 도입됐다. 실질적 지방자치에 필수적인 재정 확보를 위해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라는 제약이 따르지만 자치세의 종목과 세율, 징수 방법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과세자주권’을 보장한 것이다. 또 조세로 조성된 재원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사무 부담 범위에 맞게 배분하도록 했다. 이러한 자치재정권 보장이 지방정부의 재정을 악화시키거나 지역 간 재정격차 확대를 초래하지 않도록 국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 재정조정에 대한 헌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지방정부 조직·운영 주민참여 권리 명시
지방정부의 주인인 ‘주민참여’가 강화됐다. 실질적인 지방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자치권이 주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명시하고, 주민이 지방정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참여할 권리, 즉 주민 참여권을 명확히 했다. 주민참여 없는 자치는 ‘무늬만 자치’임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주민들이 직접 지방정부의 부패와 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법률상 권리로 보장됐던 주민발안, 주민투표 및 주민소환제도를 헌법에 규정했다.

중앙과 지방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과 지방행정부의 장으로 구성되는 ‘국가자치분권회의’가 신설됐다. 중앙과 지방 간에 소통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방의 실질적 국정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입법과정에서 지방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와 관련된 법률안’에 대해서는 지방정부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지방정부에 행·재정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 추진이 다수 발생, 중앙과 지방 간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반영된 것이다. 국가자치분권회의는 지방자치와 지역 간 균형발전에 관련한 중요 정책을 심의하게 된다.

조국 민정수석이 지방분권 개헌안을 설명하면서 “지방분권은 신속하게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듯이 지방분권 관련 조항을 포함한 이번 개정안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된다. 이를 위해 개정 헌법에 따른 지방정부가 구성되기 전이라도 개정 헌법의 지방자치 규정을 적용하는 경과규정을 뒀다. 조 수석은 “기본권 조항과 함께 지방분권 조항은 이른 시기에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해 지방분권과 관련한 후속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행 헌법은 지방자치의 대원칙만 언급하고 본질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 보장 강화를 위한 입법적 조치의 가능한 범위에 대해 일정한 기준 역할을 할 수 없다”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현행 헌법에서 전문과 부칙을 제외한 130개 조항 중 지방자치와 직접 관련된 조항은 제117조와 제118조 단 두 조항에 불과하다. 더구나 두 조항은 지방자치의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지 않고, 지방자치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로 정하도록 위임하거나 유보하고 있다. 주민에 의한 자치기구 구성뿐 아니라 자기 책임성, 독립성, 지방재정 보장 등 실질적 지방자치 요소를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지방분권 개헌안은 진일보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치입법권 제한,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일원화, 자치경찰제 도입 제외 등 한계와 극복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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