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리를 처음 본 것은 용인에 있는 한택식물원에서였다. 꽃도 꽃이지만 이름이 먼저 확 다가왔다. 히 어 리? 이름이 왜 이래? 외국꽃인가? 나무 앞에 꽂아 놓은 팻말을 보니 우리나라 꽃이란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종이란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다. 개나리, 참나리, 말나리, 원추리, 싸리, 수수꽃다리, 고사리, 미나리. 모두 ‘리’자로 끝나는 식물 이름이다. 이 이름만으로 ‘리 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노래를 부를 수도 있겠다.

히어리라는 이름은 외래어처럼 느껴지지만 순수 우리 이름이다. 발견 당시 마을 사람들이 부르던 이름이 그대로 정식 이름이 됐다고 하는데, 그 뜻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혹자는 나무줄기가 희끗희끗하게 보여 그런 이름을 가졌을 거라 얘기하는 이도 있다. ‘송광납판화’란 별칭도 있는데, 히어리가 처음 발견된 곳이 송광사 부근이라서 히어리 꽃잎이 밀납 같다고 해서 납판이란 말을 붙여 송광납판화라고 불렀다. 히어리가 훨씬 예쁘다. 

히어리의 영어 이름은 코리아 윈터 헤이즐(Korea Winter Hazel)로 한국의 겨울개암나무라고 불리는데 이는 잎 모양이 개암나무 잎과 닮아서이다. 그러나 두 나무는 식물학적으로는 큰 관계가 없으니 어디까지나 이름만 그렇다는 것이다. 학명에 Koreana가 들어 있는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자랑스러운 우리 나무이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조그만 고깔처럼 조롱조롱 매달려 피는 노란색 꽃이 무척 특이하고 아름답다. 8~12개의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다. 잘 자란 나무는 몇 백 개의 꽃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개암나무를 닮은 잎은 둥근 하트 모양인데 잎맥이 아주 질서 있고 힘차게 나있어서 시원해보이고, 가을에 황색으로 물드는데 단풍이 아름답다. 열매도 가을에 익는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대부분의 나무들이 그렇듯이 히어리도 꽃이 핀 후 잎이 나온다. 개나리, 벚꽃, 목련, 진달래, 산수유, 생강나무 등이 그렇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잎이 나오기에 앞서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이유가 뭘까? 꽃은 열매를 맺는 것이 가장 큰 존재의 이유인데, 그러기 위해서 화려한 꽃을 더욱 잘 보이게 해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위해 쉽게 꽃을 찾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곤충이 아닌 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나무들 중에도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가 많다. 개암나무, 오리나무, 물박달나무 등이 그러한데, 절묘하게도 이들의 꽃은 암수가 따로 있어 수꽃은 길게 아래로 늘어지는 형태를 갖고 있다. 암꽃은 보일락 말락 아주 작은 크기로 핀다. 이들도 잎보다는 꽃이 먼저 나와 바람을 맘껏 맞고 꽃가루받이가 끝나야 잎이 나온다.

처음 본 곳이 식물원인 것처럼 히어리는 우리나라 자생식물이지만 숲과 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더구나 예전에는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했다. 지리산과 전남 백운산을 주로 전라도 등지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지다가 용인과 수원을 잇는 광교산에서도 군락지가 발견됐다. 이어 경남 남해 전남 순천 등에서 대규모 군락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포천 백운산에서도 발견돼 히어리가 추위에 강한 나무라는 것을 입증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듯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자생지와 충분한 개체수가 확인돼 2012년에 지정이 해제됐다. 대량 번식하는 기술이 발전해 공원이나 정원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데, 아직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찾지 않으니 많이 심지 못했다. 이른 봄 개나리처럼 우리 주변에서 쉬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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