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밀맥주잔, 필스너,라거,튜율립형

“맥주 한 잔과 목숨의 보증만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명예 같은 건 버려도 괜찮다(셰익스피어)”
맥주를 잔에 마셔야 한다면 어떤 잔에 마실까? 맥주의 선택만큼이나 잔 선택의 폭도 넓다. 하지만 잔가지들은 쳐내고 너댓가지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실제 대부분의 맥주잔은 이 4~5가지 기본 형태에서 변형된 것들이니 말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잔은 라거다. 라거 맥주는 한마디로 미국식 맥주이다. 전 세계에 유통되는 맥주의 85% 이상 차지하는 대중적인 맥주이다. 라거 잔은 주둥이 쪽이 바닥보다 조금 넓은 모양으로 사이다 잔처럼 길게 뻗은 모습이다. 특유의 청량감을 살리기 위해서 차게 마시는 라거 맥주 특성상 고급 잔들은 손잡이가 따로 없는 대신 하단부 4~5센치 정도가 유리로 돼 있기도 하다. 알콜 도수가 낮고 가볍게 즐기는 모든 맥주에 잘 어울리는 잔이다. 구비해도 좋지만 사이다 잔으로 대치해도 쓸 만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에일 맥주가 유행하면서 파인트 잔도 많이 사용한다. 에일 맥주에 적합한 잔이지만 영국풍의 튼튼해 보이고 투박한 디자인으로 물잔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에일 맥주의 쌉쌀한 맛을 잘 살려주기 위해 직선형이거나 완만한 곡선 모양에 주둥이가 넓은 편이다. 손잡이가 따로 없지만 주둥이 조금 아래를 볼록하게 만들어서 손잡이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직 병맥주가 유통되지 않았을 시기 영국에서는 모든 맥주를 정해진 용량의 파인트 잔에 담아서 팔아야했다. 그래서 파인트 잔이 영국식 정통 에일 맥주용 잔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기도 하다. 약간 변형된 텀블러형도 여기에 속한다. 여러모로 쓸모가 있으니 구비해두면 좋은 잔이다.

탄산이 강한 맥주에 어울리는 잔은 튤립형 잔이다. 한마디로 샴페인 잔을 조금 크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맥주에 체온이 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잔 아래 손잡이가 달리고 강한 풍미와 향과 탄산을 잡아두기 위해 주둥이가 오목하게 들어간 형태이다. 골든 에일이나 스파클 에일에도 좋고 필스너에도 어울린다. 이 튤립형 잔을 더 극대화 시킨 것이 고블릿 잔이다. 마치 튤립형 잔과 비슷하지만 와인 잔처럼 주둥이가 넓고 높이가 낮다. 넓은 주둥이는 향을 맡기 좋아서 스타우트나 트라피스트(수도원) 맥주와 같이 향이 강하고 진한 맥주에 어울린다.

수제맥주나 수입맥주 중에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맥주는 밀맥주이다. 밀 특유의 바닐라 향과 부드러운 맛이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밀맥주에 어울리는 잔은 좁고 긴 형태의 잔이다. 향을 지속시키기 위해 거품 층이 두터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긴 잔의 형태를 필요로 한 것이다. 특히 밀맥주는 따를 때 거품이 많이 나도록 따라야 밀맥주 특유의 향을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잔도 잔이지만 따르는 법도 중요하다. 예전에 맥주 맛을 잘 몰랐던 대학생 때는 그저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고 싶어서 거품 없이 가득 생맥주를 따라달라고 했을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촌스러웠던 추억이다. 맥주의 맛과 향은 거품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거품이 나도록 잘 따라야 맥주 맛이 살아난다. 그래서 맥주 따를 때 처음에는 잔을 기울이며 천천히 따르다가 거의 다 찼을 때쯤 잔을 세우면서 빠르게 따라야 부드럽고 두터운 거품을 만들 수 있다. 특히 향이 좋은 맥주일수록 거품이 두터워지게 따르는 것이 좋다. 거품이 넘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번들로 제공되는 잔은 해당 맥주병 용량이 다 들어가도록 돼 있어서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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