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학생 우리는 한민족” 독립만세 운동 재현
주민 350여명 자발적 참여 돋보여
지난달 24일 오전 9시30분. 수지구 고기동 고기초등학교 운동장에 흰 상의를 입은 주민들이 태극기와 직접 만든 다양한 깃발을 들고 모였다. ‘3·29 머내만세운동 99주년 기념 걷기대회’를 위해 모인 주민 300여명은 “우리민족 한민족”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고기초등학교에서 낙생저수지 제방, 오룡뜰 앞 게이트볼장을 지나 동천동 머내 주막거리까지 약 5Km의 구간을 3시간 동안 함께 했다.
행사를 주최한 ‘3·29 머내만세운동 기념행사 준비모임’은 △고기리와 동천동 지역 주민 모임인 ‘머내여지도’ △머내풍물패연합 △노나세 △극단동동 △밥챙알챙마을합창단 △동천동마을네트워크 △이우지역연대위원회 △밤토실작은도서관 △고기교회 △소명중·고등학교 △이우학교 △수지꿈학교 등 지역 기관 및 단체들이 참여해 구성한 조직이다. 이들 단체들은 행사 준비를 위해 3·29를 기념하는 32만9000원을 후원금으로 내놓기도 하고 재능기부를 하는 등 자발적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고기초등학교 수지꿈학교 소명중고등학교 등 마을 학생들은 이날 사용할 태극기와 머리띠를 직접 만들고 페이스 프린팅용 태극문양 도장도 함께 만들어 사용했다.
지금으로부터 99년 전인 1919년 3월 29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 소식을 전해들은 고기리 안종각 선생은 용인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일 결심을 한다. 홑이불을 뜯어 태극기를 만든 안 선생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고기리 구장 이덕균 선생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행진을 시작했다. 고기리에서 시작된 행렬은 풍덕천리 수지면사무소 앞으로 향했고 600여명 군중이 함께 만세를 외쳤다.
1919년 당시 용인 지역 만세운동은 전국에서 두 번째로 대규모였다고 전해진다. 1가구에 최소 한 명 이상 참여했을 정도였다. 머내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은 일본군 발포로 2명이 총탄에 사망하고 16명이 붙잡혀 태형 90대를 맞아야 했다. 당시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자발적으로 나섰던 조상들의 간절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 때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번 머내만세운동은 주민들이 1919년 당시 만세행렬이 있었던 길을 따라 가는 여정마다 마을에 얽힌 이야기와 사연들을 함께 소개했다. 3년째 이 지역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고 있는 모임 ‘머내여지도’는 머내 지역 만세운동 모습을 당시 판결문, 후손 증언 등을 통해 복원해냈다. 당시 만세 행렬이 지나갔던 길 역시 옛 지도와 현재 지도를 비교하고 답사를 통해 상세하게 고증해냈다. 1961년 낙생저수지 설치, 1968년 경부고속도로 준공 등으로 지형이 바뀌어 100년 전과 똑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었지만 머내여지도의 노력 덕분에 최대한 비슷한 경로를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여기에 가는 길 내내 이어진 머내풍물패연합의 공연은 참여 주민들의 흥을 돋게 했다.
행사 주체인 ‘머내만세운동 준비모임’은 걷기대회 출발부터 끝까지 기미독립선언문 첫 문장인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는 문장 뜻을 되새기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특히 마지막 주막거리에서 일본군 대사를 실감나게 읊고 미리 나눠준 콩알탄으로 현장감을 살리는 등 당시 상황을 재현하기도 했다. ‘99주년 머내만세운동’은 손수 제작한 대형 태극기를 걸고 다함께 만세를 부르며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