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따뜻한 날이 계속이다. 아이들은 내복을 벗었고 놀이터가 다시 북적인다. 들여놓았던 화분들도 다시 베란다로 내보내고, 봄맞이 대청소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숲 웅덩이에는 산개구리 알과 도롱뇽 알이 뭉게뭉게 피어나듯 자리를 잡았다. 겨울잠을 깨는 동물처럼 필자도 괜히 온몸이 찌뿌듯하고 무겁다. 식물들이 가장 늦게 봄을 알리는가 싶지만 생강나무와 비슷한 시기에 꽃망울이 터진 꽃나무가 하나 있다. 이름도 낯선 ‘올괴불나무’이다.

아직 숲은 갈색 빛인 봄날, 용인 석성산 정상 밑에서 이 나무를 만났다. 1m도 안 되는 작은 나무이다. 꽃은 아주 여린 핑크빛 꽃잎에 진달래 빛 수술이 꼭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 모습을 닮았다. 꽃이 작고 색이 연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잎은 앞뒤 잎자루 모두에 폭신한 털이 가득해서 만지면 부드럽다. 아이들이 “엄마, 꽃이 왜 아래로 피어?” 하고 묻는다. 필자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이들에겐 신기하게 느껴지나 보다. 키가 작은 풀꽃은 보통 위를 보고 꽃이 핀다. 수분을 매개하는 곤충들에게 잘 띄어야 하니 그렇다. 하지만 나무들은 키가 클수록 위를 보고 피는 꽃이 드물다. 바람을 많이 이용하는 큰 나무들은 축 쳐지는 수꽃을 피우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암꽃이 있다. 그런 면에서 튤립나무 꽃이 위를 향하는 것은 참 특이하다.

꽃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딱히 꽃이 아래 위로 핀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식물에게 꽃은 반드시 드러내어 짝을 찾아야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풀과 나무의 꽃모양이 다른 것은 생각해볼 만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다. 이 나무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특별한 이름이다. ‘괴이할 괴’자가 자꾸 머리에서 맴도는 것은 필자의 좁은 지식 때문인가. 그 생각을 털어내고 ‘괴불’ 뜻을 찾아보니 ‘어린아이들이 주머니끈에 다는 노리개’라는 설명이 있다. 괴불주머니라고 하는 풀이 있는데 그 열매가 꼭 그 노리개를 닮았다. 하지만 괴불나무는 ‘개불알나무’가 어원이라는 쪽이 더 맞는 듯하다.

괴불나무 종류는 대부분 두 송이 꽃이 한 쌍을 이뤄 핀다. 두 송이 꽃이 피는데 열매는 아랫부분이 합쳐져서 하나처럼 보이는 것이다. 밑씨가 들어있는 씨방이 부분적으로 겹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모양이 개의 불알을 닮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올괴불나무가 속한 나무의 무리는 열매가 얼마나 합쳐져 있는지, 열매 모양이 어떤지가 나무를 분류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그런 괴불나무 무리 중에 빨리 꽃이 핀다는 의미의 ‘올’자가 붙었다. 올괴불나무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는 식물이 생각 외로 많다. 생강나무, 목련, 매화, 개나리, 진달래, 개암나무, 벚나무 등 봄꽃의 많은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나무들은 지난 여름부터 꽃눈을 준비한다.

겨울에 만들어지는 것이 겨울눈이 아니라 겨울을 지내는 눈을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겨울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식물들은 꼭 겨울을 지내야만 꽃이 핀다. 사람들은 식물이 계절을 아는 생체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식물의 생체시계를 속여서 꽃피우는 시기를 조절하기도 한다. 요즘은 새들도 열심히 봄 준비를 한다.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아 키울 준비를 한다. 그래서인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너무도 다정하다. 식물의 잎이 나서 그것을 애벌레가 먹고 터질 듯 살이 오를 것이다. 그것을 또 새들이 얼른 주워 다가 아기 새들에게 먹이겠지. 또 다시 바쁜 봄이 시나브로 다가온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