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지만 코끝에 닿는 바람결에는 봄 내음이 느껴지는 어느덧 3월이네요. 지난 겨울은 몇 십 년만에 몰아닥친 한파라 할 만큼 혹독한 강추위에 세상 모든 것이 얼어붙었습니다. 이런 한파 속에 시추 두 아이를 유기한 비정한 인간이 있었습니다. 한 가구점 앞에 시추 두 아이를 지퍼가 달린 비닐 짐 가방에 넣어 버렸는데, 가구점 주인의 신고로 보호소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가방 바닥에는 사람이 입었던 듯한 패딩점퍼를 깔아놓았고요. 아이들에게는 새로 산 듯 색깔만 다른 분홍, 노랑 빛깔의 패딩 점퍼가 입혀져 있었습니다.

왜 이랬을까요? 꼭 그렇게 추운 겨울 날, 유기해야만 했을까요? 버린 인간에 대한 비난도 분노도 아무런 말도 생각나지가 않았습니다. 최강한파에 이렇게 생명을 유기한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함이 더해 마음도 입도 꽁꽁 얼어붙어 버렸으니까요.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모녀간으로 보였던 시추 두 아이. 엄마 시추는 철장 속에서 깡깡 짖는 딸 시추 볼에다가 턱짓을 하며, 달래는 듯한 행동을 취했습니다. 가혹하게 버려진 두 아이의 삶에 축복이 내려지기를 간절하게 바랐고, 아이들의 처참하고 딱한 상황에 다행히도 입양 문의는 많았으나 나이가 어리지 않은 모견 시추를 어린 시추와 함께 품어줄 입양자는 흔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세상의 끝자락을 함께 부여잡고 있었던 두 모녀에게 행복이 찾아온다면, 그것 역시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 좋은 중년의 어머니께서 두 아이 함께 입양 결정을 내려주었습니다. 키우던 시추 노견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그리고 시추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분이었습니다.

두 아이를 품에 안아주신 후, 딸 시추는 ‘포도’, 엄마시추는 ‘봉봉’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고, 서둘러 두 아이의 병원진료부터 받아주었습니다. 엄마시추 봉봉이의 뿌옇던 한쪽 눈은 노화로 인한 백내장인줄 알았는데, 각막염을 오랫동안 치료 받지 못해서 생긴 뿌연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외에 관리 받지 못해 생긴 피부병과 귀 염증, 기관지염 치료 등을 해주었습니다. ‘우리아이들 근황’이라고 보내주신 사진에 두 모녀는 서로가 껌딱지처럼 꼭 붙어있습니다. 늘 그렇게 있답니다. 폭신한 이불 위에서 창문으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엎드려있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결코 편해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왠지 짠한 서글픔 같은 것을 느낍니다. 이 아이들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아이들의 건강 상태로 보나 또한 헌 이불 버리듯이 비닐가방에 담아 하찮게 버려진 것으로만 봐도 뻔의 뻔자로 살았을 보잘 것 없는 삶이었겠죠.

하지만 분명 이 아이들은 몇 년을 같이 지낸 전 주인을 잊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저렇게 엎드려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요. 왜 그렇게까지 버린 전 주인을 기다리는 거냐고요? ‘개’이니까요. ‘개’라는 동물은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동물이니까요.

포도 봉봉 시추모녀, 전 주인의 기억을 어서 잊고, 진정한 반려견으로 사랑받는 행복한 삶을 한껏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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