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매일같이 만들어지고 쏟아져 나오는 문학·음악·미술 등 예술작품의 가장 밑 재료는 ‘자연’이라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 바람, 물, 돌, 흙 등의 자연이 문학으로 음악으로 그림을 통해 예술 또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그런지 얼굴도 피부도 이름도 다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물이나 소리에 대한 반응과 느낌은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내리는 비를 보고 느끼는 차분함이나 차갑게 부는 바람소리로 얻어지는 쓸쓸함. 저녁 무렵 창밖에 소복이 쌓이는 함박눈에서 느껴지는 포근함 등의 느낌은 만국의 음악·문학·미술작품에도 공통적으로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보다 비교적 많이 투박한 대중음악에는 짧은 시간 안에 전하고자 하는 것을 압축해서 듣는 이의 느낌을 끌어내고 감정의 호흡을 함께 하려다보니 그것이 직접적으로 더 많이 느껴지지요.

자연을 주제로 한 대중음악들이 참 많습니다만, 늦은 겨울비가 내리는 창밖을 보노라니 비에 대한 음악이 왠지 더 와서 닿네요. 예전에는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도 좋았고 케이스 케이즈의 ‘Rhythm of the Rain’이나 비 제이 토마스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같은 경쾌한 느낌을 주는 곡도 참 좋아했습니다. 차분한 느낌을 주는 ‘Blue eyes crying in the rain’이나 ‘Rainy Night in Georgia’같은 명곡들도 자주 들었던 곡이었습니다. 그 중 ‘Rainy Night in Georgia’는 원래 그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가수보다 워낙에 빵빵한 가수들이 많이 불러놔서 원래 주인은 뒤로 감춰져 버렸지요.

원래 그 곡을 만든 가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위해 조지아로 가서 트럭운전을 하기 시작했대요. 그런데 비가 와서 일을 못하게 되는 날에는 집에 앉아 기타를 치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외로움을 이겨내곤 했다는데, 그때의 일상을 담아 노래로 만든 것이 바로 ‘Rainy Night in Georgia’랍니다. 그런데 정작 이 곡의 주인이 취입한 버전은 히트를 못하고 있다가 이듬해 브룩 벤튼에게 곡을 취입하게 해주자 이 곡은 브룩 벤튼 인생의 최고 히트곡이 돼버리고 맙니다.

하이고! 억울해라~  곡 주인이 당시에 이름이라도 좀 나고 먹고 살만했던 가수였다면 그 억울함은 덜하겠지만, 당시 그 가수는 그야말로 별 볼일 없던 그런 존재였거든요. 그 원작자가 바로 토니 조 화이트(Tony Joe White)입니다.

뭐 우리나라에서는 아는 분들만 아는 가수이지만 ‘Rainy Day Lover’나 ‘I want to be with you’ 같은 곡을 들어보면 ‘아~ 이런 사람이 다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름 한가닥 하는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입니다. 오랜 기간 저 유명한 C C R이나 제임스 테일러와 함께 공연했던 가수이기도 하고요. 마크 노플러, J.J 케일, 에릭 클랩튼, 마이클 맥도널드 같은 쟁쟁한 뮤지션들과 오랜 기간 동료로 지내오며, 함께 만든 앨범도 내놓은 실력파이기도 합니다. 자기 나라인 미국에서도 자기만의 영역을 빛내고 있지만 토니 조 화이트의 인기는 유럽 쪽에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과 맞먹을 만한 영국에서 열린 제3회 Isle of Wight Festival(1970년)에서 그야말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후에 유럽 팬들의 열광적인 그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고 하네요.

데뷔 초 토니 조 화이트는 똑같은 곡을 자기가 취입했을 때는 무반응이었다가 그 곡을 다른 가수가 부르면 히트하곤 하니까 아마도 대중음악계에서 나름 위축된 생활을 하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더스티 스프링필드의 ‘Willie and Laura Mae Jones’가 그러했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For Ol' Times Sake’와 ‘I've Got a Thing About You Baby’가 그러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브룩 벤튼의 ‘Rainy Night in Georgia’가 그러했는데 이 곡은 어림잡아 100명 이상의 다른 가수들이 다시 불렀던 팝의 고전이 됐지요. 소소한 히트곡을 내놓기는 했지만 뭐 그다지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티나 터너 등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만들어주는 것에 치중하거나 에릭 클랩튼이나 조 카커 등의 가수들과 함께 유럽공연에 나서서는 유럽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를 지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80, 90년대를 보냈어요. 2000년대 들어서 드디어 말년의 운대가 피었는지 그 이름이 조금씩 다시 알려지기 시작하네요.

백인 블루스 음악계에서는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토니 조 화이트는 블루스와 소울뮤직이 흑인들만 가능하지 않고 백인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란 듯이 보여준 1세대 백인 블루스뮤지션 중 한 명입니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블루지한 느낌은 우리나라 팝 팬들이 듣기에 아주 안성맞춤으로 매력적입니다. 그의 다른 곡들도 우리나라 팝 팬들이 듣기에 그만일 정도로 좋지만 보컬과 아주 깔끔한 기타연주로 이뤄진 ‘Closer To The Truth’라는 곡을 이번 호에 소개하는데 가사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어찌됐든 블루지한 느낌의 음악에서 사랑 타령을 하지 않는 곡을 만나기는 드문 일입니다.
토니 조 화이트의 ‘Closer To The Truth’ 들어보기
http://youtu.be/SWY47W_K8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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