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용어이며, 우리 사회의 아주 어두운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일종의 사회현상이다. 영어 그대로 해석한다면 ‘나도’. 숨겨진 의미까지 드러내면 ‘나도 당했다’다. 성적 추행이나 폭력을 당했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의 흉악한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 행위에 대한 반성마저 가증스럽게 연습하는 저급한 인간의 속내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게다가 가해자 대부분은 남성이며 피해자 다수는 여성이라는 얄궂은 관계에 답답한 한숨도 나온다.

이 글을 쓰는 것 마저 부담될 만큼 남성이란 이유로 사회적으로 느껴야 할 부담은 가히 무겁다. 그럼에도 애써 침착하게 하고자 하는 말이 있다.  

용인이라고 과연 다를까. 아니 용인에서 미투 운동이 시작될 수 있으며 확산 될 수 있을까. 취재를 다니다보면 미투를 통해 밝혀질 법한 일들을 간혹 듣는다. 하지만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은 수년이 지나도 지근에서 어렵지 않게 만난다.

그뿐인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 어떤 이는 선배란 신분을 무기삼아 한 후배 여성에게 해도 되나 싶은 말을 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사회는 해도 되나 싶은 말을 ‘성추행’이라고 규정 내렸다.

더 나가서 언론에 보도된 추행과 관련한 기사에는 또 이런 일이 생겼나.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 정도의 관심만 가졌을 뿐 저 행동은 잘못된 것인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지 않을 듯하다.

미투 운동이 연극계 한 거물인사의 추잡한 행동을 수면위로 끌어 올릴 즈음. 연극계에 있는 한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비슷한 연배의 지인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자신이 목격한 또 다른 일들도 말했다. 지목한 대상자만 다를 뿐 행동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가해자=남자’란 공식도 그대로 적용됐다.

지인은 무감했다. 오히려 미투운동이 별난 행동이라는 말까지 했다. 두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이 지인은 40대의 여성이다. 이점을 감안하면 미투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복잡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별난 행동을 하는 걸까. 용인에서 만난 한 취재원이 수년 전 기자에게 말한 많은 이야기들이 공론화 되지 못한 것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별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을 강제하기 때문은 아닐까. 

용인 지역사회가 미투에 나서라고 강요하지는 못한다. 미투에 나선다고 막는 것 역시도 월권이다. 이 운동은 이미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현상이 돼 가고 있다. 용인 역시 미투 확산에서 해방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서 누군가를 지칭하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는 마음 아파해야 하며, 때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훈련을 통해 용인은 한층 더 성숙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버겁게 현실을 참아내고 있는 그래서 누군가 손을 먼저 내밀어주길 절실히 바라는 동료가, 친구가, 그리고 가족은 없는지 말이다.

어쩌면 미투운동의 또 다른 의미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존중, 평등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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